전체 글(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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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나 역시 갇혀 있는지
5월이면 부처님 오신 날이 있는 달이기도 하다. 큰 일은 아니지만 이곳 불교인회 일을 도와주다보니, 이곳 토론토 한인 신문에 광고를 낼 일이 있고, D 라는 한국 사찰의 Y 주지 스님과 통화를 할 일이 있었다. (주변에 화를 잘 낸다는 소문대로) 짧은 전화를 마치고 나서도 한참을 불쾌한 마음을 가라 앉히려고 시간을 보냈다. 법정 스님이나.. 법륜 스님같이 청정한 스님들이 그리워지면서도 문득 오전에 통화한 Y 스님에 대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불같은 성격의 그 스님은 중생들에게 그런 깨달음을 주려고 온 보살인가? 아니면 수많은 땡추 중의 하나인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삶은 희노애락의 바다이다. 좋을 때도 많지만 화나고 슬플 때도 하염없이 다가온다. 매번 그러한 감정의 바다에서..
2021.04.29 -
[산책] 강릉의 봄
나는 나를 지나쳐 왔다. - 박노해 인생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나는 너무 서둘러 여기까지 왔다. 여행자가 아닌 심부름꾼처럼 계절 속을 여유로이 걷지도 못하고 의미있는 순간을 음미하지도 못하고 만남의 진가를 알아채지도 못한 채 나는 왜 이렇게 삶을 서둘러 왔던가. 달려가다 스스로 멈춰 서지도 못하고 대지에 나무 한 그루 심지도 못하고 주어진 것들을 충분히 누리지도 못했던가 나는 너무 빨리 서둘러 왔다. 나는 삶을 지나쳐 왔다. 나는 나를 지나쳐 왔다. 아침에 고향 친구 H와 통화를 한 후, 그 친구의 카톡에 있는 사진을 우연히 보다가 감탄했다. 내가 자란 고향 강릉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구나.. 하는 자각과 언제나 자신의 주위에 있는 것에 감사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반성했다. 지난 여름과 가을에 뒤늦게 ..
2021.04.28 -
[산책] 캘거리의 산책로와 나무들
첫마음 - 박노해 - 한번은 다 바치고 다시 겨울나무로 서 있는 벗들에게 저마다 지닌 상처깊은 곳에 맑은 빛이 숨어있다. 첫마음을 잃지말자 그리고 성공하자 참혹하게 아름다운 우리 첫마음으로 (많은 시인들이 나무와 꽃들을 예찬한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박노해 시인의 -첫마음-이라는 이 시를 좋아해서 다시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박노해씨 역시 수많은 나무에 대한 시를 썼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서 다시 한번 겨울 나무들이 살아나는 것 같은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며칠 전 아침에 아들의 직장을 데려다주면서 신호등에 서 있었는데 바로 앞에 있던 교회의 전광판에서 "봄은 변화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Spring proves that change can be beautiful..
2021.04.25 -
[산책] 벚꽃 인지
봄 산의 물가에서 모든 엽록소들은 개별적이다. 신생한 이파리의 어린 엽록소들은 빛과 물을 빚어서 유기물을 합성해 내는 것이라고, 식물학 책에는 쓰여져 있는데, 나무의 내부에서 그 '빚어짐'이 어째서 가능한 것인지, 그 '빚어짐'은 사실상 어떤 회피할 수 없는 충동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인지, 왜 '빚어지는' 것인지, 그 빚어짐을 가능케 하는 시간과 빛의 은밀한 작용의 질감은 어떤 것인지를 말할 수 없는 한, 내가 읽은 식물학 개론은 결국 '산 나무는 살아간다'는 이 단순한 명료한, 하나 마나 한, 그러나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외마디 비명의 가엾고도 지루한 동어 반복이었다. 풍경과 상처 (산유화 p 77) 김훈 안 사람과 같이 강아지 산책을 하는 덕에 내가 나무 가까이서 찍을 수 있었다. 찍고 보니 실..
2021.04.24 -
[산책]목련 꽃이 피기 전
목련은 등불을 켜듯이 피어난다. 꽃잎을 아직 오므리고 있을 때가 목련의 절정이다. 목련은 자의식에 가득차 있다. 그 꽃은 존재의 중량감을 과시하면서 한사코 하늘을 향해 봉우리를 치켜올린다. 꽃이 질 때, 목련은 세상의 꽃 중에서 가장 남루하고 가장 참혹하다. 누렇게 말라 비틀어진 꽃잎은 누더기가 되어 나뭇가지에서 너덜거리다가 바람에 날려 땅바닥에 떨어진다. 목련꽃은 냉큼 죽지 않고 한꺼번에 통째로 툭 떨어지지도 않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꽃잎 조각들은 저마다의 생로병사를 끝까지 치러낸다. 목련꽃의 죽음은 느리고도 무겁다. 천천히 진행되는 말기 암 환자처럼, 그 꽃은 죽음이 요구하는 모든 고통을 다 바치고 나서야 비로소 떨어진다. 펄썩 소리를 내면서 무겁게 떨어진다. 그 무거운 소리로 목련은 살아 있..
2021.04.23 -
[단상] 코드 리뷰를 마치고 (+python연습)
XOR / AND 연산자 문제를 다시 풀어본 후 아침에 어제 밤 대회에 참석하여 풀지 못한 XOR과 관련된 4번 문제를 다시 천천히 풀어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가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등학생들의 수학을 가르치면서 (초등학생 때 배워야 하는 더하기/곱하기의 교환/결합 법칙을 잘 모르는 학생들에게) 교만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도 했다. 내가 짠 코드가 O(N * N)의 속도로 for-loop 의 순환을 돌면서 메모리 초과와 TLE(Time Limit Exceeded)에 걸려서 결국은 대회가 끝나고 다른 사람의 코드들을 분석하면서 나의 실수와 부족한 점들을 찾았다. 어제 대회 직후에는 reduce / xor 과 같은 간단한 함수를 못 찾아서 놓쳤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아침에서야 reduce 를 ..
2021.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