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밀턴 프리드먼 - Milton Friedman

2020. 9. 28. 09:00북미 이야기/가벼운 책 이야기

이 책은 밀턴 프리드먼의 "대공황"(The Great Contraction 1929-1933)을 읽기 시작하면서 우연히 마을 도서관에서 발견한 책이었다. 아마도 청소년 정도의 연령층을 대상으로 밀턴 프리드먼에 대한 소개를 하기 위한 책 같은데 200 페이지도 되지 않는 작은 분량이지만 프리드먼의 삶과 업적을 매우 풍부하게 잘 설명하고 있다.

밀턴 프리드먼

난해한 경제학

개인적으로,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과거에 벌어진 경제 현상에 대해서만 해석을 잘 할 뿐이고 미래에 대해서는 어떠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 놓을 수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물론 나 역시 학부에서 미시 경제를 들었었고, 다시 군 생활을 마치고 방황하던 중 다시 미시/거시 경제를 수강할 기회가 있었지만 경제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함에 따른 편견이 강했는지 모르겠다.

이 책을 읽고서 보다 더 프리드먼 교수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지금 같이 읽고 있는 "대공황"에 대한 이해에도 간접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 아마도 나와 같이 경제학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경제학에서 설명하는 수많은 이론들을 난해하게 느껴지는 이유들에 생각을 해보았다. 일단 그들이 자주 쓰는 많은 전문 용어들에 대한 기본이 부족한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이고, 체계적인 훈련이 부족한 것도 있을 것이다.

내가 근래에 생각하게 된  경제학이 난해한 이유 중 하나는 경제 현상을 해석하는 수많은 사건들 가운데에서 어떤 것이 원인이고 어떤 것이 결과인지 (Cause & Effect)에 대한 감을 잡을만한 실험을 하기가 매우 곤란하다는 사실이다. 이는 물리학이 다른 과학이나 공학에 비해서 실험을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이 서적은 경제학자들에 대한 어떤 선입관과 가치를 많이 바꾸게 한 계기가 된 책이 될 것 이다.  근래 4-5권의 경제 서적을 읽으면서 (그 중에는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도 있다) 케인즈주의와 통화주의의 차이를 몇 번씩 다시 읽게 보았다. 다른 책들에서 여러가지 설명을 찾아서 비교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대략적인 차이를 느낄 뿐이었지, 나 자신의 언어로 스스로에게 설명을 하지 못하는 것을 느꼈다. 오히려 우연하게 읽은 이 작은 책이 나에게 선명하게 이런 문제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던 것 같다.

 

프리드먼을 이해하기 위한 그의 주변 사람들

유럽에서 각자 다르게 이민을 온 부모가 미국에서 만나 결혼을 한 후, 세 명의 누나와 유일한 막내 아들로 태어난 프리드만은 Rutgers 대학을 졸업하고 시카고 대학에서 석사를 마친다. 그리고 콜롬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병행하며 몇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후에 박사 학위를 마친 후 시카고 대학에서 교수로서 자리를 잡게 된다. 

시카고 대학을 중심으로 그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먼저 경제학의 시카고 학파를 만든 Frank Knight(1885-1972) 교수와 Jacob Viner(1892-1970).교수는 그에게 자유주의에 대한 큰 영향을 미친 은사들이었다. 무엇보다 프리드만 교수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시카고 대학에서 석사 과정 중 만난 그의 부인 로즈(Rose Director)이다. 그녀는 그와 평생을 지식과 삶을 같이한 반려자가 되었다.

또한 시카고 대학에서 만난 두 사람의 친구는 그의 생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동료이자 경제학자이다. 1980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동료 학자인 조지 스티글러(George Stigler, 1911-1991) 와 미국 통계청(SRG, Scientific Reseach's Statistical Research Group)에 일하며 프리드먼에게 같이 일할 기회를 주었던 경제학자 Allen Wallis(1912-1998)이다.

또한 오스트리아 출신이지만 시카고 대학에 합류하여 197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고, 특히 시카고대학 시절 출간한 "종속에의 길"(Road to Serfdom,1944)로 유명한 하이에크(F.A. Hayek, 1889-1992) 역시 프리드먼과 교류한 중요한 경제학자이다.

읽으면서 인상적인 부분은 프리드먼은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학생들에게 매우 성실한 자세를 요구하는 교수였다는 것이다. 그는 (결코 잔인하거나 악의적이지 않지만) 공개적이고 솔직한 평가와 비평을 많은 학생들에게 하는(Blunt, frank, but never cruel or malicious in his comments and criticisms, he mentored many students) 편이었던 것 같다.

프리드먼(본인도 197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에게 한 과목 이상을 수강했던 학생들 중 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제자들은 6명(James Buchanan-1986, Harry Markowitz-1990, Gary Becker-1992, Robert Lucas-1995, Myron Scholes-1997, James Heckman-2000)이나 되었다.

 

논란에 쌓인 박사 학위 논문

석사를 마친 후 콜롬비아 (Columbia)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위한 논문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그는 사이먼(Simon Kuznets) 과 같이 쓴 논문(Income from Independent Professional Practice)에서 미국 의사들의 급여가 다른 전문직에 비해서 ⅓ 이상 더 받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주된 이유는 미국 의학협회 (AMA,American Medical Association) 에서 의대 합격자 수를 제한함으로 이러한 현상이 발생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콜롬비아 대학 박사 학위 규정에 따라 자신의 논문을 출판 해야만 학위를 받을 수 있는데 이 논문을 심사한 위원들은 의사 협회와 반발을 우려하여 출판을 보류하였던 것이었다. 다행히 심사위원회(Bureau)의 이사인 웨슬리(Wesley Cclair Mitchell)의 도움으로 논문은 출판할 수 있었다.

 

케인즈 이론과 통화주의 이론의 비교

이 책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운 것은 "케인즈 이론과 통화주의의 차이" 이 부분이었다. 그 역시 최초에는 케인즈 이론에 큰 문제를 발견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15년에 걸쳐서 슈와츠(Schwartz)와 공동으로 "미국의 화폐 역사"(A Monetary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1867-1960)를 연구/저술하면서 그는 "통화 공급의 급격한 감소가 대공황의 근본 원인이었다"고 확신하기 시작했다.

한편 케인즈는 정부의 지출을 늘리고 적극적인 재정적자를 통해서 유효수요(Demand)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과 같이 재정적자를 감수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정부의 지출"을 늘리면 정부의 돈이 시장으로 흘러가는데 이것이 궁극적으로는 돈을 푸는 정책인 "통화 공급"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나는 사실 이해하기 어려웠었다. 

다시 한번 정리해보자. 케인즈에 의하면 실업률은 수요의 감소에 의해서 일어나고, 인플레이션은 수요의 증가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한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실업률이 심각한 경우 정부는 소비를 늘릴 수 있도록 세금을 낮추어서 전체 수요(aggregate demand)를 올리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경제 성장을 자극하고 다시 낮은 실업률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인플레이션이 심한 경제에서는 소비를 줄이고 세금을 올려서 전체 수요을 낮추어 인플레이션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플레이션과 실업율의 관계는 필립(A.W. Phillips)에 의해 만들어진 필립 곡선으로 잘 설명이 되었다. 즉 전체 수요가 증가하면 보다 큰 인플레이션과 낮은 실업율을 유도하고, 낮은 수요는 낮은 인플레이션과 높은 실업률을 가져온다는 것이었다. 즉 아래와 같이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은 역함수와 같은 관계를 보여준다.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이 역함수(Inverse)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필립 곡선

이러한 케인즈 이론이 설명하기 어려웠던 현상은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의 경우다. 이 경우는 물가가 높은 인플레이션과 높은 실업율이 동시에 발생한다. 프리드먼은 통화 정책으로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일단 시중에 통화량이 증가하면 이는 유효 수요를 증가시켜 물가 상승을 일으켜서 인플레이션이 생기고 실업률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케이즈와 프리드먼의 논리가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여기서 프리드먼은 이러한 실업율 감소는 임시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있지만 물가 상승으로 자신들의 화폐의 가치가 더 많은 것을 구매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소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업률이 더 낮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19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후반까지 벌어진 현상이 인플레이션과 높은 실업률이 동시에 벌어지면서 이러한 프리드먼의 통화주의 정책은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여전히 지금도 케인즈 이론은 단기적인 현상을 설명하는 경우는 좋은 심미안을 제공하고 있지만, 이전같이 경제 현상을 주도적으로 설명하는 독보적인 유일한 이론의 위치를 가지고 있지는 않고 있다.

이 설명을 읽으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과학사에서 뉴턴과 아인쉬타인에 대한 비교였다. 적합한 비유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뉴턴의 역학이 힘과 운동에 대한 설명이 매우 뛰어나지만 일부 설명하지 못하는 자연현상에 대해서는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한 점이다. 모든 과학 발전이 그러하지만 이전에 설명하지 못하던 현상을 새로운 이론이 설명할 수 있게 되면서 지식의 외연이 넓어졌다. 그렇다고 하여서 결코 뉴턴의 이론이 형편없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여전히 고전 역학과 일반 운동에 대한 설명은 뉴턴이 정립한 F = ma 로 충분하고 아름답게 설명이 가능하다.

이와 같이 케인즈가 재정적자와 소비를 증가시켜서 불경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바라본 것은 매우 뛰어난 직관과 관찰의 결과였다. 단지 인간의 지식은 끝없이 발전하고 넓어지면서 프리드먼은 케인즈의 관찰에서 한 발자욱 더 나아간 것이라고 이해된다. 정부가 "통화 공급"이라는 입력을 시작 하였을 때 케인즈가 처음에 설명한 "유효 소비가 증가"하는 것은 "원인"이라고 보기 보다는 "결과"적인 사회 현상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아마도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이 어느 정도 경기 부양을 일으킨 성공 요인을 이러한 통화주의의 관점에서 설명을 한다면, 정부가 재정 지출을 통하여 유효 수요를 일으켜서 경기 부양이 되었다(여러가지 국가의 사업으로 사람들을 고용하고 급여를 줌으로써 사람들이 소비를 하게된 순환)고 보는 것보다는 (돈이 풀리는) 통화 공급의 효과로 29년에서 33년까지 누적되던 대 공황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미국 정책에 미친 영향

그는 아내 로즈와 같이 집필한 "자본주의와 자유"(Capitalism & Freedom) 에서 두 가지의 중요한 주제를 언급했다. 하나는 군대 징집에 대한 징병제(Draft)에서 모병제(all-volunteer)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유는 (1) 징병제는 젊은이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뺏는다는 것이고 (2) 모병제가 징병제보다 궁극적으로는 더 사회적 비용이 적다는 것이다.  다른 주제는 미국 내에서 교육을 향상하기 위한 바우처 제도(Voucher System)[1]에 대한 것이었다.

이러한 프리드먼 교수의 신념은 37대 닉슨(Richard Nixon) 대통령의 경제 자문을 하면서 결과를 만들어내게 되었다. 그는 대통령 자문단의 임원으로 참석하여 모병제에 대한 조사를 한 후 1973년 1월 27일 미국 의회의 비준을 받으며 미국 군대의 강제 징병제는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모병제 협의에서 일했던 것 만큼 나에게 만족감을 준 사회적 활동은 없었다"(No public policy activity that I have ever engaged in has given e as much satisfaction as the All-Volunteer Commission) 고 밝혔다.

 

미국 정책에 미친 영향 칠레 군사 독재와의 관계

프리드먼은 시카고 대학의 하버저(Al Harberger) 교수의 소개로 남미 칠레의 독재자인 피노체트(Augusto Pinochet)의 초청을 받아 1975년 칠레를 방문하게 된다. 독재자 피노체트와 만나서 경제 회복에 대한 자문을 하게 되었는데 많은 무고한 시민들과 정적을 죽인 이 독재자에게 경제적인 조언을 한 이 사건은 이후 (노벨상을 받을 때를 포함하여) 그에게 많은 비판자가 생긴 이유가 되기도 했다.

아뭏든 그의 경제 회복에 대한 "어느 정도의 자유 시장 개혁 정책"의 조언을 초기에 받아들인 칠레 경제는 프리드먼 교수의 예측대로 처음에는 다소 더 악화되는 듯이 보이다가 1년 후부터는 성장세로 돌아서기 시작하였다.

 

프리드먼 교수의 다른 작품들

1976년 노벨상을 수상한 이후 PBS 방송사에서는 프리드먼 교수에게 대중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경제 시리즈를 제안하였다. 프리드먼과 부인 로즈는 이후로 약 3년에 걸쳐 이 프로젝트를 같이 기획하고 10편에 걸쳐 만들었다.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 라는 제목으로 나온 이 프로그램은 프리드먼이 직접 세계의 다양한 지역을 소개하면서 대공황, 케인즈이론, 인플레이션, 정부 규제와 같은 주제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나머지 후반부에서는 시카고 대학 안에서 미국 사회 내에서 유명한 경제학자, 기업인, 정치인들과 토론하는 내용을 보여준다. (이 방송은 DVD 로 아마존에서 구입할 수도 있고 -다소 화면 선명도는 떨어지지만 - 유투브에서 무료로 볼 수도 있다)

Free to Choose TV 시리즈

[1] Voucher System

* 바우처 제도 (공적 기관이 사립 학교에 수업료의 지불을 보증하는 증명서를 발행하여 공립·사립학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계획 -  네이버 지식 검색)

[] Phillip's Curve

www.economicshelp.org/blog/1364/economics/phillips-curve-explained/

[] Free to Choose 방송

youtube.com/watch?v=D3N2sNnGwa4&list=PL4742023192B69941&inde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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