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전쟁과 평화

2019. 10. 6. 02:03버트란트-러셀-Bertrand-Russell

정당한 전쟁, 해악한 전쟁 

러셀은 인류의 역사는 수많은 전쟁으로 점철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전쟁은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인간과 사회에 피해를 주었지만 일부의 침략 전쟁에 대한 저항은 정당하다고 인정을 한다. 그는 자신의 모국인 영국이 스페인 무적함대를 대항하여 싸운 칼레 전투(1588)는 어느 정도 정당하다고 평가를 하였고, 실패한 헝가리의 저항 역시 정당하였다고 평가한다.

단지 헝가리의 저항 역사는 그들이 처한 역사적 사건들을 고려할 때 수많은 침략 전쟁 중에서 어떠한 저항을 언급하였는지는 확실하지가 않다. 13세기의 몽고 침입에서부터,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침략에 따른 패배, 1703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한 민족 독립 운동의 실패, 1848년 헝가리 독립 운동의 실패 등 러셀은 오스만 제국의 침략에 따른 저항 전쟁이나 합스부르크 왕가로부터의 독립 전쟁 중 하나를 언급하였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Wyatt:러셀 경, 당신은 단지 전쟁들만이 있어왔다고 말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Russell:예,그것은 꽤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당신은 당신이 말한 '단지(just)'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내려야 하지만 말입니다. 당신은 어떠한 면에서는 좋은 법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 전쟁들이 있었으며 당연히 어느 한편이 매우 좋은 법적 정당성을 가진 엄청난 전쟁들이 있었다고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해악을 끼친 것보다는 좋은 영향을 끼친 전쟁을 의미할 수도 있는데 그러한 것들은 전혀 같은 범주의 것이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Wyatt:두 가지 종류에 대한 예들을 들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Russell:예, 어렵지 않게 많이 있습니다.제 생각에 어떠한 공격에 대한 저항, 또는 어떠한 공격은 정당한 것이 존재합니다.영국이 스페인 대함대(Armada)를 저지한 것은 전적으로 정당하였습니다.제 생각에 헝가리인들이 그들의 자유를 찾기 위해 시도한 것은 전적으로 정당하였습니다. 첫째의 예는 운이 좋았고, 두 번째의 경우는 운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그러한 논쟁(issue)의 문제들로 들어가면 당신은 보다 다른 구분을 알게될 것입니다. 당신은 선의가 그로부터 존재하였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자,법적인 의미에서 어떠하건간에 전혀 정당화가 될 수 없는 예를 들어봅시다. 그것은 백인들에 의한 북미대륙의 차지입니다. 비록 그것이 전혀 법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저는 그것은 대체적으로 잘 진행되었다고 말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Wyatt:미국의 독립전쟁은 어떠합니까?
Russell:음 , 제 생각에 그것은 전적으로 정당하였습니다. 제가 추측하건데 그것은 법적으로 정당한 것은 아니었으며, 사실상 만약 당신이 지금 미국으로 간다면 당신은 조지 워싱턴을 비난하는 것을 암시하는 진술을 말하여야 할 지 모릅니다.당신은 합법적으로 세워진 정부가 아닌 것은 힘이나 폭력으로 저지되어야 한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물론 그것은 과거를 돌아보면 말입니다.

 

성공한 전쟁

러셀과 위앗트의 대화에서 언급한 성공한 전쟁이라는 정의는 (그 전쟁들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전쟁 이후에 인류 문명사에 어떠한 긍정적인 기여를 하였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알렉산더와 시이저의 예를 들어 설명하였는데, 알렉산더는 헬레니즘을 전파하여 그리이스 문명이 다른 많은 지역과 나라에 영향을 주도록 시작 하였다. 시이저는 현재의 프랑스 지역을 최초로 점렴하여 로마의 문명이 서구 유럽으로 전파되도록 한 성공적인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를 하였다.

Wyatt:자. 당신은 긴 세월을 두고 보았을 때 성공한 전쟁들이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Russell:오,그렇습니다. 예. 자, 고대의 역사로 돌아가서, 알렉산더와 시이저를 봅시다. 그들은 모두가 위대한 정복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법적으로 정당하지 않은 전쟁들에 종사하였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그러한 정복들은 모두가 대단한 일들을 성취하였습니다. 알렉산더의 정복은 헬레니즘을 인근 동부지역에 건설하였으며 그리이스 언어의 지식들을 전파였으며 우리들로 하여금 그리스인들의 문화적 유산을 보존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제 생각으로 만약 알렉산더가 아니었더라면, 어느 누구도 현재까지 그리이스인들이 문명을 위하여 무었을 하였는지 지금같이 잘 알수가 없었으리라 봅니다.


Wyatt:시이저는 어떻습니까?
Russell:음 .시이저는 갈리아 지방(Gaul)을 정복하였고, 갈리아 지방을 문명화된 세계로 만들었으며 동시에 현재의 우리 모두가 흠모하는 프랑스언어가 탄생하도록 만들었습니다.이것은 시이저가 아니었더라면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쟁의 원인들

러셀과 위앗트의 대화 중 이 전쟁에 대한 두 사람의 역사관이 일치하는 것은 모두가 영국에서 자라고 교육받으면서 그들이 만들어진 역사관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볼 필요가 있다. 이 두 사람이 논의하는 오스트리아 계승 전쟁(1740-1748)은 실제로 100% 프레드릭 대제의 개인적인 욕심만으로 일어났는지는 (비록 소수라고 해도) 역사학자들 간의 다른 의견이 존재한다.

이 전쟁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급된 두 명의 주인공에 해당하는 프로시아 왕인 프리드릭 2세 (1712 – 1786, 프로시아 재워 1740-1786), 합스부르그 왕가의 상속녀 마리아 테레사 (1717-1780) 와 함께 신성로마 제국에 대한 약간의 이해가 필요하다. 이 전쟁은 신성 로마 제국의 카를 6세가 죽으면서 아들이 없이 딸인 마리아 테레사에게 모든 제국의 상속을 남기면서 발생한 사건이다. 

대부분 한국에서도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한번은 배우는 신성로마제국은 매우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몇 가지 이론들이 있지만) 신성로마제국의 시작은 800년 프랑크 왕 카를루스 1세가 지금의 스페인 이베리아 반도를 통해 넘어오던 이스람 세력을 막아내면서 로마 교황으로부터 황제의 관을 수여 받으면서이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칭은 몇 세기 후에 시작된다. 서로마가 멸망한 후 3세기 후 서유럽에 로마제국을 대신하는 강력한 제국이 없었고 수백 개의 왕국, 공국, 자유도시들의 연합체이자 연방국가로 제한된 선거군주국으로 발전했다. 신성로마제국은 1806년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라인 동맹을 만들면서 공식적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8세기 당시 신성로마제국은 선출직이었으며, 당시의 제국의 황제인 카를 6세가 죽으면서 마리아 테레사에게 주어진 합스부르크 가문에 대한 모든 상속권에 대해 주변의 많은 나라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마리아 테레사의 아버지 카를은 딸에게 상속권을 인정받기 위해 많은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고 영국을 비롯한 프랑스, 스페인, 네델란드, 교황청, 러시아과 같은 많은 군주국가의 승인을 받았지만, 반면 폴란드, 프로이센 같은 국가는 처음부터 이 상속권을 인정을 하지 않았고 후에 프랑스와 스페인 같은 나라도 프로이센과 같은 반대로 입장을 바꾸었다.

프리드릭 2세는 그 중의 한  당사자 중 한 군주였고,  프로이센 군을 이끌고, 마리아 테레지아가 상속권을 받은 오스트리아의 슐레지엔을 먼저 공격했다. 비록 선전포고도 없는 분명한 침략 전쟁이었지만, 선출직 황제 직의 상속권에 대한 분쟁을 100% 동의하지 않은 이해 국가에서 국왕의 개인의 분노로 침략행위만을 결정했다고 보기에는 일방적인 한 편의 의견만을 받아들인 듯 하다.

 

Wyatt:당신은 전쟁의 주 요인들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이것은 경제적인 것입니까 아니면 지배자의 광기 입니까? 아니면 유행하는 열광 또는 정신의 분출입니까?

Russell:음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예들이 있습니다.어떤 때는 이런 것, 어떤 때는 저런 것 이런 식입니다. 자, 프레드릭 대제가 마리아 테레사를 공격한 것을 봅시다. 제 생각에 그것은 순전히 군주의 대권이었습니다. 저는 그 어떠한 다른 이유들이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18세기는 어떠한 특별한 정당성이 없도 군주들이 그들의 영광이나 명예를 위하여 쉽사리 전쟁이 일어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그러나 18세기 이후로는 그러한 전쟁들이 그렇게 보편적이지는 않았습니다.

프리드릭 2세  (1712 – 1786, 프로시아 재위 1740-1786), 마리아 테레사  (1717-1780)

 

수많은 왕국과 공국으로 구성된 신성로마제국(The Holy Roman Empire)  - 972년 에서 1032년 사이


Wyatt: (그것은)...명백하게 '지배자의 광기'의 범주였습니다.
Russell: 예,음 .그리고 당신은 경제적 이유에 대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영국과 스페인의 길고 기나긴 대결에서 그러한 경제적인 이유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영국의 입장에서, 그 이유들은 대체로 경제적인 것이었고, 스페인의 경우에는 그들은 종교적이었습니다. 영국인들은 추구할 만한 것을 위하여 싸웠고, 스페인들은 추구할만 가치가 없는 것을 위하여 싸웠습니다.그러나 그것은 영국 측의 순수히 또는 거의 순수히 경제적인 기나긴 사업이었습니다.그리고 군중의 히스테리의 결과를 보자면, 그것 역시 일정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Walpole은 매우 오랜 시간 대영제국의 수상이었고 군중의 광기로 인하여 마침내 굴복하고 스페인과의 전쟁을 하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스페인과 전쟁을 하여야 하는 습성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좋아하였고 지도자인 그는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

러셀은 1차 대전이 시작하기 전에 영국의 참전을 반대하다가 구속을 당한 경험이 있다. 이 개인적인 사건은 후에 러셀의 수많은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사건이다. 그가 인정하는 영국의 1차 대전 참전의 법적 정당성은 독일의 벨기에의 침략에 맞서 방어 조약에 따른 합리성만이 존재한지만, 도덕적으로나 역사적인 맥락에서 필요한 전쟁이라고 믿지 않았다.


만약 그의 주장대로 영국 정부가 어느 정부 중립을 선언했다면 1차 대전의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확률이 크다. 영국의 참전으로 영연방 -캐나다, 호주와 같은 영연방의 참전이 뒤를 이었고 미국까지 참전을 하는 인계선 역할을 하였다. 실제 1차 대전이 끝났을 때 일부 독일 국민들은 자신들이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왜냐하면 당시에도 군사 강대국이었던 러시아와의 탄넨베르크 전투에서 독일군은 (고대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이 로마를 깐느 전투에서 물리친 것 같은) 고전적인 승리를 현대전에서 재현했다고 평가할 만큼 대승을 거두었다. 이때의 장군인 힌덴부르크는 나중에 1925년 바이마르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될 만큼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러셀의 주장대로 만약 독일이 전쟁에서 지지 않았다면 히틀러의 등장은 매우 힘들었고 러시아 혁명에 따른 소비에트 연방도 탄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우리의 입장에서는 2차 대전에 독일과 함께 연합군에 대항했던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 전쟁도 방향이 바뀌었을 확률이 크다. 이러한 수많은 가정은 매우 혼란스럽고 곤혹스럽지만, 러셀의 1차 대전에 대한 영국의 참전 반대 운동은 합리적인 평가라고 이해한다. 그는 일관성있게 1차 대전과 2차 대전에서의 독일은 분명히 다른 도덕적 기준올 가지고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후에 러셀은 베트남 전쟁에서는 미국의 침략 전쟁을 가장 앞장서서 비난하고 반대하던 지성인 중 하나였다.

Wyatt:당신은 일차 세계대전에서 평화주의자 였습니다. 당신은 이차세계대전에서는 평화주의자가 아니었다는 일관성이 없는 면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Russell:음.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모든 전쟁이 정당하거나 모든 전쟁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견해를 가진 적이 없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어떠한 전쟁은 정당하고 어떠한 것은 그렇지 못하다고 느낍니다. 저는 이차대전은 정당한 전쟁이었으나 일차대전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Wyatt:왜 당신은 이차 세계대전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Russell:왜냐하면 저는 히틀러가 철저히 불관용한 인물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모든 나찌 일당의 관점은 명백히 끔찍하였습니다.그리고 저는 만약 나찌가 그들이 할수만 있다면 그렇게 되도록 시도하였던 "세계를 정복"하였다면, 세계는 완전히 삶이 지옥이 되는 장소로 되었을 것이고 우리는 반드시 그것을 중지시켰어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랬어야 합니다.


Wyatt:당신은 여전히 우리가 일차대전에서 싸운 것이 실수였다고 생각하십니까?
Russell:예.저는 영국이 중립을 취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당시에도 그렇게 이야기를 하였고 지금도 그 견해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일차대전에서 중립을 유지하였다면, 그 전쟁은 보다 짧게 끝났으리라고 생각합니다.그 전쟁은 최초 개전당시보다 독일이 보다 강한 상태로 끝났을 수도 있었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떠한 의미에서도 가장 강한 상태는 아니었을 것입니다.그리고 독일의 Kaiser는 -그 당시 영국에서 존재하던 흑색선전에도 불구하고-그렇게 나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사실상 그 당시에는 Kaiser의 정부보다 좋은 정부는 거의가 없었습니다.매우 적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나쁜 정부를 대항하여 전쟁으로 나가면 당신은 언제나 상황을 악화시킵니다. 물론 그러한 것들이 나찌를 대항하여 전쟁으로 나아가는 것에 적용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더 이상 나빠질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이것은 대체적으로 적용되며 만약 우리가 1914년에 중립을 유지하였다면 우리는 나찌를 만들지 않을 수 있었고 우리는 공산국가들을 만들지 않을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공산주의 국가들은 만약에 전쟁이 짧았더라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러시아 군대의 붕괴와 그 당시 러시아의 완전히 혼란한 상태로부터 명백하게 기인하였습니다.

 

Wyatt:러시아에서는 어떠한 일들이 일어났을 수 있었겠습니까?
Russell:러시아에서는 1905년의 혁명이 기도하였던 일련의 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거의 확실히 사회주의적 혁명들이 권력을 차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공산주의자들보다 그렇게 나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제 생각에 그들은 어떠한 사태들에 대해서 대단히 관대한 국가를 성취할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Wyatt:당신은 독일에서 나찌가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합리적인 부류의 민주주의로 점차적인 발전이 있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Russell:예.그것은 이미 그렇게 진보하고 있었습니다.그것은 꽤 합리적인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으습니다.우리가 먼저 영국에서 이룩하였던 만큼 꽤 빠르게 말입니다.제 생각에, 분명히 독일은 일정한 시간에 합리적인 의회민주주의가 되었을 것이며 (1차대전의 전후) 파괴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나찌 철학은 만들어지지 못했으리라 생각합니다.


Wyatt:그러나 우리가 일차대전에서 싸우지 않았더라고 가정해봅시다. 당연히 독일은 프랑스를 정복하였을 것이고, 그러한 연후에 영국을 둘러보면서 말하길 "자, 저것도 쓸어버리자"라고 말할 수도 분명히 있었을것입니다.
Russell:그렇게 생각할 어떠한 이유도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독일인들이 원하던 것은 분명 대단히 제한적인 것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좋은 해군을 갖도록 허락받기를 원하였고, 그들은 우리들이 원하던 것보다 식민지의 팽창을 허락받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발칸에서의 일정한 지배권을 얻기를 원하였습니다.그들은 오스트리아가 발칸에서 일정한 지배력을 갖기를 실지로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Kaiser의 목적은 제가 알고 있는 한에서, 대단히 유한하였고 제한적이었습니다.저는 그가 세계지배를 위한 목적이 있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Wyatt:그러나 다른 면에서, 영국의 관점에서 볼 때 일차대전은 정당한 전쟁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Russell:음 .그렇습니다. 당신이 -당연히 논쟁의 여지가 있는- 우리가 벨기에의 방어를 위하여 전쟁에 갔다는 것을 예를 든다면 그것은 법적으로 정당하였습니다. 만약 당신이 그것에 동의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전적으로 정당하였습니다. 그러나 법적인 정당성이 있는 모든 전쟁이 실제로 싸워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전쟁을 즐기는 사람들

러셀이 당시의 영국 내의 일반 여론이 참전을 원하는 가운데 소수자로서 1차 대전을 반대하고 당국에 체포되어 구금 상태로 형무소 생활을 하였다. 당시의 정부의 선전과는 다르게 어떠한 방식으로 러셀이 독일에 대한 정보를 알았으며 어떠한 기준으로 그는 다른 결론을 내렸는지에 대해 앞으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 대화 뿐만이 아니라 러셀의 다른 에세이들에서도 강조하는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는 인간의 모험심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여러가지 해소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것은 북극이나 히말리아 등산, 해저 탐사, 화성에 대한 도전과 같은 극단적인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을 격려함으로써 인간이 가진 모험적인 도전 정신을 타인에 대한 공격적이거나 전쟁을 선호하는 쪽으로 방향이 나아가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이해이다. 이는 매우 뛰어난 대안이며 이러한 모험 정신은 인간의 창의력과 새로운 가능성들을 지속적으로 발견하는 지적인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Wyatt:당신은 사람들이 전쟁을 즐긴다고 생각하십니까?
Russell:음, 대단히 많은 사람이 그렇다고 봅니다.1914년 일차대전이 발발하였을 때 그것은 저를 충격준 것 중의 하나였습니다.같이 운동하기 위한 나의 모든 부전주의자 친구들은 전쟁은 정부들의 사악한 책략들로 인하여 국민들에게 지워진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런던의 거리들을 걸어다니면서 사람들의 안면들을 바라보았는데 저는 그들이 전쟁이 시작되기 이전보다 진정으로 행복해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출판하여 그러한 것을 이야기하였는데 이것은 이러한 나의 이야기들을 싫어하는 반전주의 친구들 사이에서 자기비판을 야기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아직도 전쟁이 그들의 이웃의 일이 아니거나 그것이 그다지 아주 나쁘지 않다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즐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쟁이 당신의 영역안으로 온다면 그것은 그렇게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Wyatt: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즐긴고 가정하고 만약 그들이 그것을 하도록 허락되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들의 공격적인 감정을 처리하기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Russell:저는 그러한 감정들이 반드시 공격적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그것들은 모험적입니다(adventurous). 그리고 저는 이러한 모험에 대한 기회들이 모험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능하도록 열려있어야 하는 것이 대단히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큰 돈을 쓰지 않더라도 산악에 등산할수 있어야 합니다.당신은 북극이나 남국에 가고 싶다면 갈수 있어야만 합니다. 당신은 모험을 위한 모든 기회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쟁과 인간의 본성

러셀이 언급한 스웨덴에 대한 마지막 전쟁은 우리에게는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역사이다. 이는 19세기 초 나폴레옹의 마지막 전투가 끝나가면서 나폴레옹 편에 있었던 노르웨이와 영국 편에서 승전국으로 있었던 스웨덴 측의 갈등이 촉발된 것이다. 당시 프랑스 장군 출신으로 1810년 갑자기 스웨던 국왕 챨스 13세(Charles XIII) 의 양자로서 임명된 챨스(Charles John)라는 장군이 실제적인 스웨덴을 통치를 하고 있었다. 그는 노르웨이가  크리스티안(Christian Frederik) 국왕을 중심으로 자치권을 행사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그는 스웨던 군대를 이끌고 1814년 7월 4일 노르웨이의 섬 Hvaler를 공격하였다. 전체적으로 우세를 점하던 스웨덴의 공격에 맞서 노르웨이의 방어적인 공세로 8월 7일 교섭이 진행되었으며 1814년 8월 14일 노르웨이의 Moss에서 평화 협정이 체결되었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노르웨이와 스웨덴 연방은 1905년 노르웨이의 독립 이전까지 지속되었다.

챨스는 1818년에 챨스 14세가 되어 1844년 죽기 직전까지 스웨덴 국왕으로 집권한다. 그는 특히 1834년 대영제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갈등이 심할 때 공식적으로 중립의 위치를 선언하고 자국 내의 경제를 발전시켜 많은 인구증가가 있었다. 챨스 14세의 인생은 매우 재미있는 일화가 많은데 그는 나폴레옹의 가장 신임받던 장군이면서 마지막 전투에서는 그의 반대편에서 싸웠고 챨스의 부인인 데지레라는 여인은 젊었을 때 나폴레옹의 연인이었으나 나폴레옹이 조세핀과 결혼을 하면서 파혼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폴레옹과 데지레의 이야기는 오래 전 한국판 번역으로도 나온 리더스 다이제스트 판 - 나폴레옹을 사랑한 여인, 데지레 - 에 상세히 나와 있다)

러셀은 스웨덴의 예를 통하여 전쟁이 없어도 인간의 행복에는 어떠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전쟁이 없을 때 인간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필요 조건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스웨덴 내에서 자살을 하는 통계가 많은 것은 사실이며 이는 자살을 죄악시 하는 기독교적인 교리에 얽매이지 않았기에 발생하는 통계일 뿐이라고 이해하는 듯 하다. 사실 이 명제에 대해서는 조금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자살이 많다는 것은 어찌보면 행복하지 않다는 반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래 대화에서 중요한 러셀의 주장은 인간의 본성이 반드시 폭력적인 성향을 본성으로 가진 것은 아니라는 확언이다. 그는 인간은 무한히 변할 수 있으며 어떠한 교육을 받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의 이러한 신념은 매우 존경받을만하며 모든 사회가 어떠한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다. 그의 다른 대화 편에서도 이야기를 하지만 모든 전쟁 영웅에 대한 학교 교육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것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러셀의 가르침이다.

 


Wyatt:당신은 스칸디나비아인들 - 또는 말하여, 스웨덴인들 -이 그렇게 오랜 기간 전쟁을 가지지 않은 후 보다 행복하다고 생각하십니까?
Russell:예, 그렇습니다. 그들은 1814년 이후로 전쟁을 하지 않았습니다.그리고 제가 여지껏 보아온 바로는 스웨덴은 제가 알고 있는 가장 행복한 나라중 하나입니다. 저는 완전히 그들이 삶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전쟁을 경험하지 못하여 어떠한 후회하는 기미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Wyatt:(하지만) 그들의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지 않습니까.
Russell:예.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종교로 인해 얽매여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럴뿐입니다. 그들은 대단히 종교적인 국민이 아닙니다. 종교주의적 스웨덴 사람들은 대다수가 북미의 중서부로 이주를 하였으며 남아있는 스웨덴 국민들은 보다 비종교적입니다.


Wyatt:하지만 전쟁을 가지는 것은 인간의 본성 중 한 부분이 아닙니까?
Russell:음, 저는 인간의 본성이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본성은 무한하게 가변성이(malleable) 있는 것이며, 그것은 사람들이 보통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 만약 당신이 애완용 개를 야생 늑대와 비교를 하신다면 당신은 훈련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볼 수 있습니다.애완용 개는 좋고 편안한 창조물(creature)입니다. 가끔 짖기도 하고 그리고 우체부를 물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그는 좋습니다. 반면 야생 늑대는 꽤 다른 존재입니다. 이제 당신은 인간에 대해서도 똑같은 것을 할 수 있습니다.인간들은 그들이 어떻게 훈련을 받는가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뀌고 우리가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은 대단히 멍청한 생각이라 봅니다.


Wyatt:하지만 분명히 우리는 오랜 시간 인간들을 전쟁을 가지지 못하도록 노력하였지만, 여전히 우리들은 그 목적과는 요원하지 않습니까?
Russell:음. 우리들은 인간을 설득하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작은-아주 작은-부류의 사람들만이 노력하였고 절대 다수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Wyatt:만약 스웨덴 사람들 전쟁이 그들을 조금이라도 격려하였더라면 그들은 조금이라도 더 즐거웠을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까?
Russell:저는 그렇게 가정할 최소한의 이유도 없다고 생각합니다.그렇지 않습니다.현재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경험하였습니다.그리고 저는 그들이 절대로 스웨덴 사람 이상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최소한 많은 여행으로부터 제가 가지고 있는 인상으로 말하자면 말입니다.

 

전쟁과 군중 심리

러셀의 1차 대전과 2차 대전에 대한 견해는 매우 일관된 편이다. 그는 2차 대전에 대하는 많은 사람들의 실제의 인권에 대한 걱정과 나찌에 대한 두려움과는 다르게 1차 대전에서는 어떠한 국가주의에 의한 정치적인 광분에 의하여 흘러간 부분이 많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광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외치는 소리로 군중 심리가 작용될 때 인간은 흥분된 감정상태로 되기 쉽다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단지 러셀의 주장대로 집 안에서 텔레비젼을 보며 뉴스를 접한다고 하여 군중의 흥분속에 둘러싸이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현대 미디어 세상의 변화를 볼 때 100% 공감하기 힘든 면이 많다. 21세기가 들어오며 인터넷을 비롯한 수많은 방송매체들 역시 상업적인 이윤 추구과 각종 기업과 정부와의 관계 속에서 수많은 언론사가 객관적인 언론보도를 넘어서는 하나의 이익 당사자로서 존재하는 경우가 더욱 많아졌다. 집에서 혼자 인터넷과 TV 를 본다고 하더라도 일부 언론이 의도된 선택된 사실보도만 지속적으로 접할 때, 군중은 또다시 어떠한 편견에 사로잡힐 확률이 매우 커진다.  버트란트 러셀 철학자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세상은 지속적으로 변했고 더욱 복잡해진 면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Wyatt:그렇다면 당신은 이차대전으로 사람들이 그렇게 매우 행복하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Russell:음 제 이차대전은 일차대전과는 매우 다른 방법으로 일어났습니다. 일차대전에서는 물론 그 전쟁안에서 싸워야 하는 사람들은 전혀 행복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이 매우 쉽게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즐길 수 있는 사람들은 집에서 안주하며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 뿐입니다.그러나 이차대전에서는 ,음, 이것은 매우 매우 다릅니다. 그리고 저는 사람들이 그들이 일차대전에서 가졌던 전쟁에 대한 감정인 흥분으로 고무된 상태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Wyatt:대화의 처음 당신이 언급하였던 것 중, 군중들의 히스테리가 수상 Walpole로부터 유도하였던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말입니다..당신은 오늘날에서 우리들은 군중의 광분으로부터 적게 취약하다고 생각하십니까?
Russell:적습니다. 그 당시보다 적다고 봅니다. 사람들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교육는 대중매체를 통하여 거대하게 군중 히스테리를 증가시키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지금 그와는 반대되는 경향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주로 저는 텔레비젼을 보며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그들의 집에 앉아서 세상에 대한 그들의 뉴스를 얻게 되고, 소리치기 시작하는 많은 군중의 흥분된 홀안에 앉아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할 때 군중의 광분되는 주 요인들이 되는 것은 당신이 커다란 대중 모임과 같은 거대한 집회들이라고 봅니다. 모임들이 적게 되는 한, 군중 히스테리는 커지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Wyatt:전쟁이 막 선포되려고 하는 시점에서 트라팔가 과장에서 군중들이 집회를 하는 상황들이 지금은 그렇게 빨리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Russell:음.저는 빨리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트라팔가 광장은 매우 편리하여서 그 곳에 가기는 아주 편리합니다. 저는 트라팔가 광장은 계속 유지되리라 봅니다. 그러나 다른 상황이라면 일어날 수 있는 똑같은 정도에 있어서는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전쟁이 매우 절박한 상태라면 어리석은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거대한 군중들이 트라팔가 광장에 성원하기 위하여 모일 것입니다.그들은 적들을 죽이기 위한 정부의 결심을 메아리 칠 것입니다.이것은 기묘한 일입니다. 이것이 당신이 기대한 인간의 본성은 아닐 것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군중심리가 전쟁에 작용하는가하는 방법이며, 제 생각에 그러한 경향은 적게 증가할 것이라고 봅니다.

 

1965년 6월 30일 런던 의회 앞에서 Bertrand 과 Edith Russ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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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weden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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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스(Moss), 스웨덴 노르웨이 평화 협정

https://en.wikipedia.org/wiki/Convention_of_M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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