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란드 러셀 대화 - 서론

2019. 10. 5. 11:36버트란트-러셀-Bertrand-Russell

버트란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은 20세기를 관통한 가장 유명했던 철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수학자로서 시작하여 철학, 과학을 비롯한 광범위한 지식에 영향을 미친 철학자이다. 그의 영어 발음은 '러셀'보다는 '러쓸'에 더 가깝지만 한국 독자들에게는 '러셀'로 익숙해  있고 그의 많은 책이 번역되어 한국에서도 적지 않은 독자들이 있다. 

 

버트란드 러셀은 존 러셀(Lord John Russell, 1792-1878)의 손자로, 그의 할아버지 존 러셀은 빅토리아 여왕 내각에서 수상을 역임한 정치인이었다. 존 러셀은 1832년 의회 개혁 법안(Parliamentary Reform Bill)을 통과시킨 당사자였고, 외무대신(Foreign Secretary)으로 재직시에는 미국 남북전쟁 당시 영국의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도록 노력했던 정치인 중 하나였다. 러셀은 할아버지로부터 시작된 백작(Earl)이라는 귀족 작위를 지니고 있었으며, 1949년 조지 6세 영국 국왕으로부터 메리트(Order of Merit) 훈장을 수여받았고 195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59년 봄 약 5일에 걸쳐 촬영된 이 대화는, BBC 방송의 기획으로 13개의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서 사회자인 우드로우 위아트(Woodrow Wyatt)가 질문을 하고 러셀이 답변을 하는 식으로 진행되었고 그 방송은 현재 유투브에서도 일부 볼 수 있다. 러셀의 요청으로 어떠한 대본이나 재촬영을 허락하지 않고 대화는 기록되었는데 그 이유는 러셀 본인이 '연기자가 아니다(Not an Actor)'는 이유였다. 사회자인 우드로우는 나중에 노동당 소속으로 영국 의회의 의원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그 대화 내용은 1960년 The World Publishing Company 에 의해 출판되었고 원 제목은 ' 버트란드 러셀 - 그의 마음을 말하다(Bertrand Russell - Speaks His Mind)' 이었다. 번역을 하고 나서  개인적으로 제목을 '버트란드 러셀과의 대화' 라고 하는 것이 더 책 내용을 잘 설명한다고 생각하였고 앞으로 이 책을 언급할 때 '대화'라고 줄여서 말하고자 한다.

 

Bertrand Russell - Speaks His Mind

'대화' 는 일반 문학 작품에 비하면 그렇게 길지 않은 내용이지만 버트란트 러셀의 전체 사상을 어느 정도 알고 있지 않으면 어떤 부분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나 스스로는 5년간의 직업 군생활과 IT 업계에서 오랜 시간 일을 하면서 기술 문서들을 부분적으로 번역해야 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이 번역을 하게 된 동기는 순수하게, 러셀의 저작과 그의 사상을 개인적으로 좋아했고 이 내용이 국내에 소개되지 않아서 2000년 개인적으로 쉬는 동안 작업을 한 것이다.

 

스스로 이 작업을 하는 가운데 많은 번역가가 제일 먼저 고려해야하는 문제로 고민했다. 원문을 살려야 하는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살려야 할 것인가? 고민 끝에 결정한 것은 문학 번역과 같이 원문을 살려야 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이었다. 왜냐하면 러셀의 많은 저술들은 그의 높은 지적 수준에도 불구하고 매우 이해하기 쉬운 명쾌한 논리와 수려한 문장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가능하면 그의 문장의 내용은 가능한 최대한의 영어 원문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이 그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서광사에서 출간한 러셀의 '서양의 지혜'라는 책은 그런 측면에서 매우 잘 된 번역서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번역을 하고 난 후, 몇 번의 검토와 보완을 했지만 여전히 한국어와 영어가 가진 문화적 차이에 따른 간극이 존재하고, 특히 러셀이 대화를 할 때 의도하였던 부분들이 나타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다. 주변에 친한 지인이나 친구들에게 이 번역을 보여주었지만 내가 받은 피드백은 일단 주제가 무겁게 보이고 13개로 구성된 대화들의 내용이 건조하고 쉽게 읽히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그런 이유로 이 번역은 거의 20년 동안 그냥 내 개인 공간에서 잠자고 있었다. 그러던 중 최근 한 고향 친구가 몇 권의 책을 출판하고 다음 책을 준비하던 중 나와 이 [대화] 편에 대한 번역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 친구와 대화를 하면서 깨달은 것이 번역의 내용을 쉽게 전달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 두 가지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첫째는 다소 긴 대화 내용을 소주제 별로 나누고, 둘째로는 그 소주제별로 내가 이해하는 범위 내에서 이해를 돕는 주석을 넣는 것이었다. 사실 이 작업을 오래 전에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매우 조심스럽고 두렵기까지 하였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논어'와 같은 동양 고전은 많은 주석이 있으며 그 중에는 주자나 다산 정약용 같은 대학자들의 주석이 존재하고 있다. 내가 러셀과 같은 커다란 지성인의 저작에 일정한 분량을 임의로 나누고 나의 평가를 쓴다는 생각 자체는 번역자의 미천한 수준을 고려할 때 사실 두려운 작업이었다.

 

하지만 이런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해하는 러셀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런 주석 작업에 대한 긍정적인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여전히 그의 방대한 저서 중 아직 국내에 번역 소개되지 않은 작품이 매우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국어로 번역된 러셀의 저서들을 대부분을 몇 번씩 다독하여 읽었는데, 그의 수필이나 관련 서적에서 내가 러셀에 대해서 깊은 존경심을 가졌던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제자와 자신의 책을 읽는 독자에 대한 태도였다. 그는 생존에 전세계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많은 편지와 질문을 받았고,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하여 답변을 하려고 노력하였던 지성인이었다.

내가 이해하는 러셀이 맞다면, 그의 책과 사상을 좋아하고 오랜 시간 그의 저서들를 애독하던 어느 한국어 문화권의 한 사람이, 그의 사상을 번역하려고 이런 저런 시도를 한 자체에 대해서 그는 깊은 애정을 가지고 응원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13편의 각 주제별 내용은 원래 사회자와 러셀의 연속적인 대화의 흐름이다. (크게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대화의 내용들을 요약할 수 있는대로 소주제의 제목을 넣고, 내가 그 내용들을 설명하는 주석을 (대화 시작 전에) 작은 박스 안에 넣었다. (푸른 색의 철자가 번역자의 주석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많은 러셀의 저작을 더 번역하고 소개하고 싶지만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이곳 캐나다에 있는 McMaster 대학에 있는 버트란트 러셀 연구소를 방문하고 그들이 가진 러셀의 기록들을 소개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것 역시 알수 없는 일이다. 단지 20세기의 커다란 철학자의 많은 저서들이 여전히 한국에 소개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앞으로도 많은 연구와 해야할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있다는 좋은 신호로 이해된다. 왜나하면, 무엇보다 러셀은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많은 존경을 받았고 그 스스로가 어린 시절부터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많은 고통과 방황 속에서 수많은 미신과 폭력을 이겨내고 행복할 수 있는지 추구한 진실된 지성인이었다.

 

98세를 치열하게 살면서 러셀이 고민하고 경험했던 많은 고백은 지금도 읽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전율을 던져준다. 끝으로 방황하는 어떤 젊은이에게는 다음과 같은 러셀의 고백이 불확실한 인생에 대한 커다란 위로와 어떠한 식으로 방향 제시가 될 수 있으리라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수학은 - 바르게 바라본다면 - 단지 진리만이 아니라 또한 지고의 아름다움도 가지고 있다.  조각의 그것과도 같은 차갑고 엄격한 아름다움이란, 우리의 약간 본성의 어떤 부분에도 애원하지 않으며, 그림이나 음악의 우아한 장식도 없고, 그럼에도 장엄하게 순수하여,  단지 가장 위대한 예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엄격한 완벽함이 가능한 (아름다움인 것이다.)"

버트란트 러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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