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철학이란 무엇인가..

2019. 10. 5. 11:53버트란트-러셀-Bertrand-Russell

 

철학과 과학의 차이

르네상스를 지나면서 서양 철학은 경제학, 심리학과 같은 많은 학문으로 세분화되기 시작하였고, 철학체계 자체는, 고대 그리스 소크라테스로부터 근대의 칸트, 헤겔, 니체에서 사르트르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개인이 모든 세부적인 것을 이해하기 힘들만큼 광범위한 역사와 지식 체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구체적이고 이해하기 힘든 수많은 철학자들의 이론을 이해하기 전에) "철학의 역사"는 인간이 처한 구체적이고도 역사적인 시공간적인 환경 안에서 현실적인 고민과 갈등 속에 공통되게 흐르던 문제들을 고민하고 기록한 것이라는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러셀의 의견에 의하면) 인간이 알고 있던 당시의 수많은 지식, 과학과 종교, 문화와 같은 보편적인 지식들에 대한 회의의 시작이 철학적 사유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러셀의 정확한 지적같이, 인류 역사상 과학이 발전하면서 많은 철학적 지식들은 더 이상 철학적인 질문이 아닌 다른 개별 지식의 영역으로 흡수되거나 정리되어 왔다.  그가 설명하는 역사적인 사례로 기원전 인류의 지식으로는 알 수 없었던 물질의 최소 구성 단위인 '원자'에 대한 질문은 이제는 물리학과 같은 과학의 지식으로 넘어왔다.

현재와 미래에도 의학과 관련된 유전학이나 생명공학,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철학적 질문들이 만들어지며 이러한 질문 중 일부는 과학적 발견이나 해답이 생기면서 더 이상 철학적 질문이 아닌 다른 과학이나 공학의 지식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Wyatt: 러셀 경,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Russell:음. 그것은 대단히 포괄적인 질문입니다. 제 생각에 어떠한 두 철학자도 당신에게 그에 대한 똑같은 대답을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 개인적 견해는 철학이란 아직 확실한 지식이 아닌 객체에 대하여 회의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 역시 단지 저의 대답일 뿐이지 다른 사람들의 것은 아닙니다.

 

Wyatt: 철학과 과학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Russell: 음 대체적으로 당신은 과학이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고, 철학이란 우리가 알고 있지 않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주 단순화된 정의로써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많은 문제들이 지식이 진보할수록 철학으로부터 과학으로 계속적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입니다.


Wyatt: 그렇다면 어떠한 사실이 완성되고 발견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철학이지 않고 과학이 된다는 말씀입니까?
Russell:그렇습니다. 철학이라고 명명되었던 많은 종류의 문제들이 더 이상 그러한 철학의 문제가 아닙니다.

 

철학의 가치

Wyatt: (그렇다면) 철학의 좋은 측면은 무엇입니까?
Russell: 제 개인적인 견해로 철학은 진정한 의미에서 두 가지의 유용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아직도 확실한 과학적 지식으로 간주할 수 없는 많은 사실들에 대하여 회의를 유지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과학적 지식은 인류에게 관심을 줄 수 있고, 주어야 하는 아주 작은 부분을 유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어쨌든 현재에 있어서 과학이 거의 알고 있지 않은 엄청나게 넓은 분야의 관심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나는 인간의 상상력이 제한당하고 현재에 알 수 있는 한계로부터 닫혀져 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가상적인 영역의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넓혀가기 위한 것도 철학적 유용성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측면으로, 철학은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유지시켜주고, 또 다른 면에서는 지식으로 보였던 많은 것들이 얼마나 실지로 지식이 아니었는지 깨닫도록 우리를 겸손하게 깨어있게 합니다.

 

철학과 과학의 차이 - 역사적 실례 

Wyatt: 그렇다면 경께서는 지금까지에 있어서 (철학적으로) 회의되어져 온 것 중 나중에 실질적인 결과(material results)를 가져온 사실들의 예를 들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Russell: 예, 그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특히 그리이스 철학으로부터요. 그리이스인들은 나중에 유용하다고 밝혀진 수많은 가정들을 만들어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 당시에는 실험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한 예로 원자에 대한 가정이었습니다. Democritus는 물질은 작은 원자들의 구성으로 되어있다는 원자론적인 가정을 만들었지요. 그리고 2천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서 그것은 틀리지 않은 과학적 견해였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대에서는 정말로 단순한 하나의 제안에 불과하였습니다. 또 다른 예로, Aristarchus 는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것과 명백한 매일 매일의 하늘의 회전은 지구의 자전 때문이라고 주장한 최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주장은 2천년 후 코페르니쿠스(Copernicus) 시대가 오기까지 거의 파묻혀 있었고 잊혀진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Aristarchus 의 기록이 없었다면 코페르니쿠스는 아마도 그러한 지동설을 생각하지 못하였을지도 모릅니다.


Wyatt: 그러한 일들이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어떠한 종류의 직관에 의해서입니까?
Russell: 아, 아닙니다. 이러한 가정들을 최초로 생각해낸 사람들은 “그것이 진리이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단지 “ 이러한 것이 아마 진리일 지도 모른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훌륭한 과학적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면, 아마도 당신은 사실일 수 있고 또한 그것이 과학의 핵심이 될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을 생각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먼저 사실일 수 있는 어떤 것을 생각해 내었다면 당신은 이러한 것이 일반적으로 (당연히) 그러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합니다.

 

철학의 역할 - 플라톤, 마르크스

아래의 대화는 러셀 개인의 가치관과 의견이 매우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나타난 편이다. 러셀은 철학자의 역할에 대한 수많은 의견 중 철학은 세상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이 노 철학자는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다고 하더라도 과학적 해답이 말할 수 없는 많은 질문들이 존재할 수 밖에 없고 철학자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이론이나 상태에 대한 지지나 반대를 위한 노력보다는, 단지 세상 자체를 정확한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Wyatt: 그러나 플라톤은 원자에 관한 Democritus 의 이론이 말도 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Russell: 플라톤은 Democritus 에 의해서 경악하였고, Democritus의 모든 책들이 불태워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플라톤은 과학을 싫어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수학을 좋아하였으나, 과학적인 어떠한 것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Wyatt: 이러한 식으로 어떤 의미에서 철학은 과학의 시종과 같은 것이 아닙니까?
Russell: 음, 그것은 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물론 단순한 과학의 시종만은 아닙니다.왜냐하면 과학이 취급할 수 없는 상당수의 많은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예로- 가치에 대한 모든 질문들에 대해서, 과학은 -단지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종국에 무엇이 좋고 나쁘다는 측면에서- 당신에게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 이야기 해 줄 수 없습니다.


Wyatt: 그렇다면 경께서는 철학에 대한 철학자들과 대중의 태도에 많은 시간들이 지나가면서 어떠한 변화들이 있었는지 이야기해주실 수 있습니까?
Russell: 음. 그것은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철학파들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두 경우에는, 주 관심사는 이 세계를 이해하려하는 시도였습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철학이 무엇을 하여야 하는 지에 관한 것이었다고 이야기 하겠습니다.그리고 스토익 학파와 그러한 것들이 철학자들에게 유용한 것으로 유행되었던 그들의 도덕적인 주 관심사에 당신이 온다면, 당신은 금욕적이 되어야 하고, 당신은 불행에 대해 인내력을 가지고 참아야 합니다.


Wyatt: Marx 가 철학자라고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까?
Russell:음,그는 어떠한 의미에서 분명히 철학자였습니다. 그러나 근래에 있어서 철학자들 간에는 중요한 구분이 존재합니다. 현재의 상태(status quo)를 지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철학자가 있는 한편, 그것을 허물기 위해 존재하는 철학자가 있습니다. 저의 경우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양자 모두에 대해서 진정한 철학의 임무가 아니라는 의미로 반대하는데, 저는 차라리 철학의 임무는 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은 Marx가 말한 것과는 정확하게 반대의 견해입니다.

 

논리적 원자론자

러셀의 '서양의 지혜 (서광사)'는 러셀이 바라보는 서구 문명에 대하여 상세하고도 큰 그림을 잘 소개하고 있다. 그 책에서 러셀은 어떤 지식을 접할 때 지식 전체의 이해를 한 후에는 모든 디테일을 하나 하나 검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러셀이 보통의 대다수 철학자와는 다르게 20대에 화이트헤드와 함께 치열한 수학자로서 방대한 수학 연구를 하고 현재 논리학의 기초가 된 [수학의 원리들] (The Principles of Mathematics) 를 출판한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러셀은 논리적 엄격함을 오랜 시간 스스로 훈련한 매우 뛰어난 수학자였고, 후에 철학자로서의 그의 학문적 관심은 넓어졌지만 방법론적인 측면에서는 이러한 엄격성을 스스로 유지하였다.  

 

Wyatt:경께서는 스스로 어떠한 철학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Russell:음, 제 스스로에게 붙였던 유일한 꼬리표(lebel)는 논리적 원자론자(logical atomist)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꼬리표에 대단히 민감하지 못합니다. 저는 차라리 이러한 꼬리표들을 회피하겠습니다.


Wyatt:논리적 원자론자...그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Russell:그것의 의미는-제 생각에-당신이 바라보는 어떠한 관련 사실에 대한 본질을 (the nature of any subject matter) 이해하는 방법은 분석(analysis)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들이 더 이상 분석되지 못하고 논리적 원자들로 될 때까지 당신은 분석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것들을 논리적 원자들이라고 부르는데 그것들은 사물들의 작은 조각들이 (little bits of matter)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다시 말해서 -어떠한 것을 구성하고 있는 생각들입니다.

 

현대 철학의 흐름

아래의 대화 내용은 러셀 특유의 유모 감각과 그의 개인적인 취향을 잘 나타낸 답변이기도 하다. 러셀의 제자 중에는 '논리철학논고'의 저자인 비트겐쉬타인가 있다. 이 독일어 문화권에서 온 이 제자는 후에 러셀과 사상적으로도 완전히 결별하는데 이 헤어짐은 노 철학자의 가치관에도 큰 변환점이 되었다. 비트겐쉬타인과의 헤어짐 이후 러셀은 더 이상 언어철학과 같은 단순히 형이상학적이고도 추상적인 논쟁에 가치를 두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 러셀을 연구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흥미있는 과제가 될 수도 있지만, 유럽의 대륙 철학의 흐름을 말하는 연역적 철학보다 영국 내의 철학 전통인 경험론적인 귀납적 방법을 러셀도 더 선호하고 있다고 이해되어 진다. 실제로 '자유론'의 존 스튜디어 밀에 대한 러셀의 평가는 '모든 것이 좋았다'고 단언할 만큼 큰 애정을 감추지 않고 있고 이러한 전통은 20세기 러셀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대화에서 러셀의 주장 중 중요하게 보아야하는 주장 중 하나는 철학자를 포함한 지식인들에게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좋은 질문'을 하는 것이라는 그의 이야기이다. 이는 교육 관점에서도 매우 의미심장한 이야기인데 문명사에 걸친 인류의 지적인 모험은 어느 한 두사람이나 한 세대에 걸친 혁신이 아니라 수없는 시행착오와 실수를 바로잡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만약 어떤 복잡한 현상이나 필요한 해결책에 대한 옳바른 문제 의식을 가지고 같이 고민을 한다면 그 당시에는 해결책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문명은 창의적으로 발전을 하였다.

현실적인 해답은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지만 언제나 필요한 해답이 필요한 시기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식 또한 중요한 지적 훈련 중 하나이다. 영어권 사회 내의 많은 학교에서 학생들의 교육에 많은 대화와 질문하는 방법을 가르치도록 하는 경향은 이러한 영어권 내의 뛰어난 철학자의 강한 신념이 전통적으로 교육 현장에서 살아서 작동하고 있다는 실증적인 예이기도 하다.

 

Wyatt:오늘날에 있어서 철학의 주된 경향은 무엇입니까?
Russell:음, 우리는 영어권 국가들과 유럽 대륙 국가들간을 구분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한 경향들은 이전에 그러했던 것보다 보다 더 분리되어 가고 있습니다. 더욱 더...
영어권 국가에서는 특히 영국에서는 철학을 위한 분리된 영역을 찾기 위한 열망으로 최근에 일어난 새로운 철학이 있습니다. 아까 제가 말한 바에 의하면, 철학은 단지 불완전한 과학의 경향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만 그러한 견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철학이 그 자신에게 일정한 세계를 (a sphere) 부여하길 원합니다. 그러한 경향은 - 당신이 언어철학(linguistic philosophy)이라고 부를 수 있는 - 철학자들이 질문에 답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문제들에 대한 의미를 보다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것들을 유도하였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견해에 대해 동의하지는 않습니다만 저는 당신에게 하나의 예(illustration)를 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언젠가 Winchester로 자전거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길을 잃었고 저는 마을의 한 상점으로 들어가서 말하였습니다."Wincheter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알려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말을 걸었던 그 사람은 뒤에 있는 방에 있는 -제가 볼 수 없었던- 다른 사람을 불렀습니다."한 신사분이 Winchester 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알고 싶어하는데요?" 그리고 한 목소리가 대답하였습니다." Winchester?"-"아,예!" - "Winchester로 가는 길?" - " 예!" - "가장 빠른 길?" - " 예" - "몰라" 그래서 저는 어떠한 대답도 없이 떠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음, 아마도 그것이 Oxford 철학이 우리가 하여야 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Wyatt:당신의 말씀의 의도는 문제를 올바르게 갖는 것이고 대답에 대한 것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까?
Russell: 예, 대답을 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임무입니다.


Wyatt:대륙에서의 접근과는 어떻게 다릅니까?
Russell:대륙에서의 접근은 -음- 이것은 보다 폭력적(full-blooded)입니다. 저는 이것에 대해 더 이상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의미에서는 이것은 보다 폭력적이고 초기 철학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이러한 것들로는)실존에(existentialism) 대한 Kierkegaard의 견해로부터 나온 수많은 종류의 철학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통적인 종교에 논리적 증명(polemics)을 부여하기 위해 고안된 철학들이 있으며 그러한 종류의 것들이 다양하게 있는데, 저 개인적인 견해로는 그러한 것들에 특별히 중요한 것들이란 없다고 봅니다.

 

철학의 현실적 유용성

철학의 실질적인 유용성을 매우 쉽고도 간결하게 답변하고 있다. 조심스러운 이해이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종교적인 가르침을 필요 이상으로 믿고 따르는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이러한 철학적 사고 훈련의 부족함이 이유이기도 하다.

러셀의 가르침은 철학적인 사고는 어떤 문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한계에 불구하고도 자신이 행동을 강한 신념으로 받쳐주는 '용기'를 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철학적 사고를 위한 훈련 방법의 과정은 '지적 훈련에 있어서 필수적'인 부분이라는 것이다.

 

Wyatt: 하지만 실용적인 유용성으로 스스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것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것들은 당신이 언급한 철학들이 아닙니까?


Russell: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현재 스스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에 대해 혼란스럽다고 편지에서 저에게 말해 왔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통적인 길잡이(signposts)를 올바른 행위로서 받아들이는 것을 중단하였고, 어떠한 다른 것을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이러한 경우에 있어서 그러한 철학들의 실용적인 유용성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그러한 철학들은 사람들이 어떠한 것이 올바른 행위인지 전혀 확신할 수가 없을 때 정열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 누구도 어떠한 것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당신이 확실하다면, 당신은 확실히 틀렸습니다(If you are certain, you are certainly wrong). 왜냐하면 어떠한 것도 확신을 얻을 자격을 가진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일정량의 의심을 가지고 우리들의 믿음을 유지하여야 하며, 그러한 의심에도 불구하고 정열적으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이러한 것은 전투를 계획하고 있는 한 장군이 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그는 그의 적이 어떻게 나올지 잘 알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가 좋은 장군이라면 그의 가정들은 옳을 것입니다. 만약 그가 좋은 장군이 아니라면 그의 가정들은 틀릴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의 삶에 있어서 우리들은 확률에 근거하여 행동하여야 하며, 제가 철학이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완전한 확실성이 없이도 정열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Wyatt:알겠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이러하게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어느 정도 믿고 신념을 가지고 있는 어떠한 사실들에 대해서 불확실성을 의식하게 할 수 있습니까? 그러한 것들이 사람들을 혼돈시킨다고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Russell:음, 물론 일정시간 그러한 것이 사람들을 혼돈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 일정량의 혼돈은 지적 훈련에 있어서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만약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과학적 지식이 있다면 그들은 그들이 느껴야만 하는 의심들로 인한 불안과 실망으로부터 피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철학의 미래

러셀은 미래에는 더욱 더 과학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철학 자체는 개별 과학이 해답하지 않은 많은 문제들에 있어서 깨어있도록 도와주고 있으며, 지적으로 겸손하고 교조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믿는다.

 

Wyatt:철학의 미래는 어떠하다고 생각하십니까?
Russell:제 생각으로 철학은 - 미래에 -그것이 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 한 것과 중세에서의 역할하였던 중요성과 같은 것은 가질 수 없으리라 봅니다. 제 견해로는 과학의 성장은 필연적으로 철학의 중요성을 감쇄시키리라 생각합니다.


Wyatt:그리고 우리들은 너무 많은 철학자들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까?
Russell:오!, 철학자는 그러한 주제에 대해 견해를 표명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철학자들이 아닌 사람들이 그러한 견해를 줄 수 있으리라 봅니다.


Wyatt:현재의 세계와 다가올 가까운 미래에 철학의 가치를 어떻게 요약하여 주시겠습니까?
Russell:음 , 제 견해로 현재의 세계에 있어서 이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첫째로 제가 말씀드린대로, 철학은 당신으로 하여금 -어째든 현재에 있어서- 과학이 다룰 수 없고, 과학적 방법 그것만으로는 적합한 방법이 아닌 크고도 중요한 의문들이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도록 깨어있게 합니다.

둘째로 철학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적으로 보다 겸손하게 만들며, 그들이 확실하다고 알고 있던 많은 것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지식에 대한 첩경(shortcut)이 없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리고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모든 철학자들이 가져 할 중요한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데- 우리가 교조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대단히 오래되고도 어려운 임무입니다.

 

그림 출처: Bertrand Russell © Athamos Stradis 2017

'버트란트-러셀-Bertrand-Russell' 카테고리의 다른 글

5. 도덕적 금기  (0) 2019.10.06
4.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0) 2019.10.06
3. 전쟁과 평화  (0) 2019.10.06
2. 종교  (0) 2019.10.05
버트란드 러셀 대화 - 서론  (0) 2019.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