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12. 21:50ㆍ북미 이야기/작은 역사 이야기
종교의 자유와 정치적 영향력
오리곤 주 (전) 검찰 총장인 데이브의 지적과 같이 어떤한 종교 단체가 정치적인 힘을 가지게 될 경우, 그 단체의 성격은 정치적인 조직인지 종교적인 조직인지 매우 파악이 힘든 경우가 많다. 2020년을 기준으로 전 세계에 팬데믹을 가져온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중, 한국의 대구에서 초기 집담 감염의 문제가 심각했던 문제 중 하나는 '신천지'라는 종교적인 단체 내부에서의 지시와 전달이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던 정치적이고도 법률적인 행정 기구의 법적인 행정력보다 더 강했기 때문이다. 종교는 어떤 이에게는 생활하는 가운데 간단한 변화와 마음의 안정을 찾는 작은 구심점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의 준거집단으로 모든 생활의 기준을 만들어내는 동기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어느 종교 단체도 그들의 공동체 내부의 단결이 강해질 수록 그들의 정치적인 성향이 강해질 확률이 커진다. 가령 (극단적인 평화주의자로 여겨지는) 여호와 증인들과 같은 모임은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비정치적이기 위하여' 모든 선거에 참석을 하지 않지만 - 내가 볼 때는 - 선거를 하지 못하게 하는 그들의 지침 자체가 매우 '정치적인' 강제력이다. 니렌 변호사도 지적을 하였듯이 '종교의 자유'와 '불법 단체 설립의 회피'를 선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모든 종교 모임이 최초 소규모로 이루어질 때는 크게 불법적인 요소와 부딪힐 이유가 많지 않지만 조직이 커지고 사람들이 많아지면 일단 적지 않은 자금과 관련된 회계상의 이슈들이 생기고 수많은 사람들에 따른 수많은 다른 의견들이 생기면서 조직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강한 리더쉽이나 교조주의적인 흐름이 지배할 확률이 커진다.
내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은 어떠한 종교도 그들의 외부 사회와 폐쇄성이 심하면 심할 수록 사회적인 감시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설사 18세 이상의 성인이라 하더라도 외부와의 격리가 길어지고 특정 공동체 내에서의 생활 비중이 커지면 자신의 의견이 자신의 결심만으로 이루어지기가 매우 힘들다. 90년 초반 광주에서 군사 교육을 받던 중 주말에 억지로 친했던 친구에게 끌려서 서울의 어느 건물에 와서 당시 유명했던 JMS (정명석) 기독교 단체의 어느 한 방에서 졸다가 집에 왔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때 느꼈던 인상은 어느 종교라도 하나를 선택할 때부터 나의 자유의지는 반 이상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이 계속 발생할 수 있겠다라는 두려움이었다.
개인적으로 이해할 때, 라즈니쉬가 가진 한계로 그의 공동체가 오리곤 주에 오랜 시간 정착하기에는 시작부터의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기독교가 근대 이후 조선에서부터 힘들게 정착하고 대한민국에서 정착한 것과 비슷하게, 아니면 천 오백년이 넘는 오랜 시간 민중과 같이 호흡하면서도 조선에서는 철저히 탄압받던 불교 같이, 라즈니쉬 공동체가 조금만 더 지역 사회의 사람들과 천천히 친해지도록 다가갔다면 그 공동체는 아직도 존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면에서는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오리곤 지역 사회의 터부와 미 지방 정부의 편협성이 그들을 공평하지 않게 대한 면이 분명히 있었지만, 그들은 과격했고 무엇보다 자신들을 제외한 기존에 있던 사람들로부터 어떠한 존경이나 겸손함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북미 이야기 > 작은 역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쇼 라즈니쉬 이야기 - 후기5(마침) (0) | 2020.08.12 |
---|---|
오쇼 라즈니쉬 이야기 - 후기4 (0) | 2020.08.12 |
오쇼 라즈니쉬 이야기 - 후기2 (0) | 2020.08.12 |
오쇼 라즈니쉬 이야기 - 후기1 (0) | 2020.08.12 |
오쇼 라즈니쉬 이야기 - 에피소드6 (0) | 2020.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