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12. 21:44ㆍ북미 이야기/작은 역사 이야기
불교적 관점에서 바라본 라즈니쉬 공동체
라즈니쉬를 이해할 때 반드시 언급되고 비교되는 종교적 지도자가 부처(Buddha)이다. 라즈니쉬 공동체가 최초 Antelope 이라는 작은 마을에 정착하면서 세웠던 찻집의 이름도 Zorba the Buddha 이다. 그리고 인도로 돌아가서 그가 죽은 후 그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제일 먼저 모인 장소도 Budddha Hall 이었다. 굳이 해석을 하면 "불교인 조르바"에 해당하는 커피숍 Zorba the Buddha 라는 이름은, 그리이스 작가 니코스카잔차키스의 "그리이스 조르바"(Zorba the Greek) 라는 작품에서 영감을 받고 이름을 만들었다.
부처의 사상을 어느 정도 받아들인 라즈니쉬의 가르침은 비폭력주의자라는 것과 명상을 중요한 종교적인 수행 방법으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백인 사회에 매우 신선하고도 호기심을 가져다 주었다. 특히 성에 대해서 자유로운 공동체 생활은 유럽과 북미의 많은 백인 젊은이들이 그를 추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82년 지방 선거 이후 포트랜드의 폭발사건 이후 그들은 자체 무장을 하기 시작하였고, 젊은 남녀들이 성적인 호기심과 욕구에 대해서 감추지 않고 자연스럽게 발산하라고 격려하는 라즈니쉬의 가르침은 전통적인 불교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불교의 수많은 철학적 깊이 중 하나는 폭력에 대한 사유인데 라즈니쉬 공동체가 보여준 총기 무장과 여러가지 복수 행위는 부처의 가르침과 반대된다. 이렇게 라즈니쉬가 자신이 원하는 부처의 가르침만을 강조한 것은, 불교의 전통이 거의 없어진 인도 내에서 부처가 힌두교의 수많은 신 중의 하나로 간주되는 문화적 전통과도 무관하지 않다.
오쇼가 쓴 반야심경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오쇼의 반야심경 서문에 쓴 내용 중 오쇼와 부다가 (동일한 수준에서) 깨달은 존재라는 주장에는 전혀 동의할 수가 없다. 실제로 불교가 인도보다 더욱 번창한 동아시아와 동남 아시아의 교리와 전통을 보면 오쇼 라즈니쉬 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깨달음을 얻고 많은 존경을 받는 수많은 스님들이 존재하였다. 그리고 불교 교리적으로 볼 때도 깨달음에도 여러가지 수준의 차이가 있어서 (라즈니쉬가 어떤 수준의 깨달음에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별도로 하다하더라도) 그는 힌두교의 문화에서 불교를 이해하고 자신이 존경하던 부다의 좋은 면 중 필요한 일부분만 자신의 종교에 이식하려고 시도했다고 이해되어 진다. 그러면서도 라즈니쉬는 불교에서 스님들에게 강조하는 자기절제와 비폭력에 대한 부다의 핵심적인 가르침은 깊게 사료되지 않았고 오히려 반대로 철저히 무시되었다.
다큐멘터리 내내에 나오는 최근의 늙은 나이의 쉴라의 증언을 바라보면서 그녀의 방 한 편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부처 상은 나로 하여금 그녀가 이해하는 종교와 불교는 어떠한 것이었을까 궁금했다. 이제는 할머니의 나이가 된 쉴라의 입장에서 그녀는 지나간 과거의 일정한 부분은, 라즈니쉬의 가르침과 그를 통해 배운 부다에 대한 긍정적인 모습으로 해석하고 싶어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부처의 가르침과 사상을 전혀 다르게 이해하고 자신들의 합리화에 사용하였다고 단언한다. (일반화의 오류를 무릎쓰고서라도) 조심스럽게 판단하자면, 불교 역사상 폭력에 대한 긍정적인 점수를 매길 수 있는 유일한 사건은 1592년 일본의 침략을 받은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서산대사를 비롯한 수많은 스님들이 무기를 들고 침략자와 맞서 싸운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서산대사의 그 쉽지 않았던 결정은 민중의 아픔과 같이 하던 부처의 제자이자 수행자들이 막연한 패배의식에서 죽어가도록 상황을 포기하는 대신 더 많은 민중들을 위해 같이 지옥으로 뛰어드는 용기를 택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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