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쇼 라즈니쉬 이야기 - 후기4

2020. 8. 12. 21:51북미 이야기/작은 역사 이야기

 

사회적 관점에서 바라본 라즈니쉬 공동체

개인적으로 오래 전 한 지인과 했던 대화 중 후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던 그의 주장이 있다.  '(스스로에게) 종교란 단지 결혼해서 같이 살아가는 배우자를 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어느 종교가 맞는지 틀리는지 증명할 수 없다면) 단지 하나의 종교를 선택할 때 그 믿음을 기준으로 맞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는 비슷한 취향과 생각을 하는 사람과 같이 지내고 싶은 것 뿐이(다)' 라는 말이었다. (그 친구의 말처럼) 비단 종교만이 아니라, 회사든 학교든 오랜 시간이 지나고 떠난 이후 돌이켜 보면 사람만 기억에 남는 경우가 많다.  그 순간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떤 업무를 수행하였던 모든 기억들은 사라지고 단지 같이 있으면서 고민을 같이하고 갈등을 겪었던 사람들 위주로만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니렌 변호사가 마지막 독백에서 고백하였던 (라즈니쉬 공동체가 가졌던 몇 가지 문제점들을 인지하면서도) 그들의 모임에 끝까지 남아있었던 강한 동기는 그가 공동체 속에 있으면 행복해하고 그들과 같이 있다는 소속감이었다. 돌아올 수 없는 지난 시간들에 대한 그의 회상을 듣다보면 그 순간들이 법적인 문제가 있었는지, 그리고 그들의 판단이 맞았는지 틀렸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같이 살아가던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그의 눈물과 감정에서 읽혀진다. 지금은 완전히 없어진 오리곤 주의 어느 작은 마을에 수 천명이 모여서 자기들이 생각한 이상적인 도시를 건설하려고 노력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을 찾아가던 모험을 시도한 사람들은 라즈니쉬 공동체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 젊음이 지나간 나에게 종교란 삶과 죽음을 이해하는 믿음의 문제라기 보다는 일상 생활 중 같이 만나는 친구들이 있는 공동체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나는 소년 시절 카톨릭 성당을 다니며 세례를 받고 복사(alter boy) 까지 하며 천주교에 대한 신앙을 키워갔다. 잠시 10대에 집안 환경의 문제로 우리 집과 친하게 지내던 이웃을 통해 여호와 증인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교리를 1년 가량 학습한 적이 있었다.  그때 가장 친했던 한 친구는 암 선고로 얼마 남지 않았던 그의 어머니 영향으로 안식교에 깊이 심취하기 시작했고 그 친구와 중 3학년 내내 기독교, 카톨릭 그리고 안식교와 여호와증인의 관점에서 성경 토론을 치열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거의 10년의 군 생활과 최전방 생활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대부분의 주일은 일반 기독교 행사에 참석을 하였다. 그리고 결혼을 하면서 기독교를 믿는 아내와 25년째 일요일 교회 예배를 참석하고 빼먹기를 하며 살아오고 있다. 2014년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개인적인 여러가지 이유로 우연하게 한국 조계종을 중심으로 한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지금은 부다의 가르침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졌다. 그러면서 불교로 더 깊이 다가가려고 하면 가장 고민되는 것은, 이곳 교민 사회에서 아내와 같이 다니면서 알게 된 수많은 기독교 교인들과의 교제를 포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대다수 그 분들은 진심으로 선량하고 실제로 가족같이 10년을 넘게 이 타향에서 같이 살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