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월정사 - 템플스테이3

2022. 7. 10. 19:32자연과명상/자연과문화

오대산 월정사를 다녀왔다. 아마도 당분간은 이 월정사를 마지막으로 가을까지는 템플스테이를 가지는 못할 것 같다. 지난 4월과 5월에 흥국사와 구인사를 다녀와서인지 앞의 두 절과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이 간 도반인 용대중 친구가 미리 공부를 많이 하고 와서 알려준다. 조계종의 25개 교구 중 4번째 본부 사찰에 해당하기도 하고 월정사를 본부로 한 말사가 강원도에 100 개가 넘는 사찰의 본부란다. 그리고 6.25 때 북한군에 의해서 본부로 사용될 것을 우려한 국군 측에서 이 절을 모두 소각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때의 사단장과 미군 장군은 모두 비극적으로 전쟁 중에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재미있게 들었다.

월정사는 지난번 방문한 천태종 본부의 구인사와 같은 큰 사찰이다.

그래서인지 사찰에는 관광객도 많고 우리와 같은 단기 체류자와 이제 막 출가를 시작한 비구/비구니 행자분들도 섞여서 매우 복잡하고 바쁘게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한달에 한번 하는 금강경 철야 독송을 하러 버스 4대에 넘는 수백명의 보살님들이 대구와 다른 타 지역에서 와서 사찰은 분주한 회사 이상으로 바쁘게 돌아가는 모양새였다.

친구와 같이 점심 공양이나 일찍 얻어먹으려고 12시 이전에 도착을 했는데, 공양을 얻어먹지도 못하고 결국 사찰에 붙어 있는 찻집에서 빵과 차를 사서 나눠 먹었다. 사찰 입구에 있는 (외부인들이 자주 들어오는) 찻집은 매우 깨끗하고 정갈했다. 다소 실망스러운 점은 우리들의 숙소도 겉보기에는 깨끗하게 만들어져 있지만, 2명이 쓰는 방은 너무 좁고 새벽에 기온이 내려가서 추워지기 전까지는 방의 환기도 덥고 답답했다. 너무 사업의 관점에서만 바라본 탓이리라. 사실 템플스테이는 많은 사찰에서 무시할 수 없는 비지니스 중 하나인 것 같다..

템플스테이 숙소 / 찻집

3시까지 할 일도 없고 해서.. 결국 우리끼리 먼저 산책을 했다.  30분 가량 산책을 하면서 도착한 다른 입구의 현판을 탄허스님이 쓰신 것이라고 한다. 월정사를 이야기할 때는 탄허 스님의 이름이 항상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캐나다에서도 유투버로 자주 보던) 그 탄허 스님이 있던 곳이라고 하니 조금은 다시 보였다.

(좌) 고목 앞에서 (중) 탄허 스님이 쓰신 (월정대가람) 현판 앞 (우) 전나무 산책길

 

그리고 주변을 서성 거리다가 3시가 되어서 방을 배정받고 옷을 갈아입었다.

템플스테이 숙소

자현 스님

대부분의 템플스테이는 체험형과 휴식형으로 구분이 되는데, 난 아직도 이 차이를 잘 모르겠다. 항상 휴식형이 조금은 저렴한데 막상 가서 보면 프로그램들에서 조금씩 제외되는 느낌이다. 특히나 월정사의 프로그램은 너무 체계가 없이 운영이 되는 느낌이고, 끝날 때까지 옆 방에 있는 다른 도반들 중 반 이상은 얼굴 한번 보지도 못하고 끝나 버렸다. 그냥 10만원 내고 투숙하는 숙박업과 무엇이 다른지 의심하게 했다.

단지 토요일 저녁에 있던 금강경 철야 법회에 우리도 참석이 가능하다고 들어서 그것이라도 참석해야겠다 생각했다. 여러 TV방송에서 나오는 자현스님의 강연을 직접 참석해서 듣게 되는 기회를 얻은 것으로 그나마 아쉬움을 달랬다. 이날도 법회는 전국에서 몰려온 수많은 대중으로 가득찼다. 90% 이상은 보살님들이고 간혹 우리와 같은 남성들이 보였다. 한국 불교를 지탱하는 힘은 어머님과 할머님이라는 법륜스님의 말이 생각 났다.

인기 강사 스님과 대중 2명

새벽 예불

새벽 4시 20분에 새벽 예불에 간신히 일어나서 참석했다. 경험상 사찰의 경험은 새벽 예불이 가장 중요하다는 기억이 났다. 그 절의 새벽 예불의 모습은 사찰 마다의 전통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쌀쌀한 공기를 온 몸으로 느끼며 일어나서 대웅전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정신을 맑게 한다.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새벽 종을 치는 스님과 종각의 모습이 보석같이 빛났다. 사실 이 하나만으로도 새벽은 보상을 받았다.

새벽 예불 가는 길에 찍은 타종

현기 스님과의 2시간 산책 길

아침 6시 반에 친구와 같이 아침 공양을 하고 있는데 한 스님이 우리 템플스테이 식탁으로 와서 7시까지 탑 근처로 모이라고 이야기를 하신다.  어제 저녁 식사 중 시끄러운 공양간을 보고 조용하게 식사하라고 일갈을 한 분이라 조금은 부담스럽게 생각을 했던 분이었다. 난 처음에는 모자를 쓰신 분이라 스님이라는 것도 확신하지 못했었다.

7시에 만나서.. (처음에는 한 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2시간을 산길을 통해 산책을 했는데 이번 템플스테이는 결국 이 경험이 가장 큰 부분이 되어 버렸다. 저녁에 집에 와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이 스님이 우리들에게 던진 화두와 명상에 대한 것들도 이전에도 비슷했다. 물 소리를 들으면서 1분 가량 눈을 감고 명상을 하고, 각자의 나무를 골라서 5분 가량 명상을 하고.. 여기까지는 ..

맨 앞에 모자를 쓰고 인솔하시는 분이 현기 스님

한 가지 나에게 놀랍게 다가온 것은 산책이 끝나가는 도중, 일행 9명 중 하나인 나에게 두 번을 직접 물어보신다. "몸이 아프지 않냐.. 배가 안 좋지 않냐" 나는 깜짝 놀랐다. 물론 살이 많이 빠져서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병색을 드러내지는 않으며 생활하려고 노력 중이었다.  마지막 산책 장소인 박물관 앞에 들어가면서 모든 일행이 돌아보는 것을 무시하고 내 왼손의 맥을 짚어 보신다. 짧은 시간이지만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맥을 짚더니 "나중에 따로"라고 말씀하시고 박물관 앞에 있던 연못의 연꽃과 잉어를 일행에게 보여주셨다.

아마도 내가 살아오면서 많은 의사들을 보면서 항상 아쉬운 점이 방금 스님과 같은 환자에 대한 짧지만 "진정한 관심"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 전, 나는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왔는가? 나는 어떠한 지휘관으로 20대의 군생활을 했고, 어떠한 아빠였으며 어떠한 친구였을까? 어떠한 남편이었고 어떠한 동료였는지가 중요하지는 않았으리라.. 단지 스스로가 만들고 싶어했던 모습이 있었다면 그 대부분이 내가 원하던 모습이 아니었다는 것은 이제서야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스스로가 누군지도 모르고 살아왔던 것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 삶이 어떻게 마무리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 짧은 인연은 오늘 나를 하루 종일 감싸돌았다. 집에 돌아와서 현기 스님에 대한 정보를 검색을 해보니 놀랍게도 이 스님은 탄허 스님의 상좌였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

11시 점심 공양을 마치고 친구와 진부로 돌아왔다. 월정사 성보박물관을 들어가보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이 남는다. 다음에 차가 생기면 다시 올 기회가 있을까.. 돌아오는 버스는 매진이 되어서 원주로 가서 서울로 오려고 하였는데 친구가 KTX 로 가라고 하며 급히 같이 택시로 역까지 이동을 했다. 급하게 12시 45분 기차를 입석으로 타고 돌아왔다. 친구의 판단은 정확했다. 아마 원주로 돌아왔다면 아직도 버스 안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는 기차 길에는 제천에 있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그리고 캐나다에서 불교 인연으로 알게 된 한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살아가는 길에 인연은 끊없이 진행된다.

수행을 마치고 정중동 앉아있는 도반의 모습

보름 후에는 내 차를 가지러 진부로 다시 와야 한다.  그 일요일은 고속도로를 운전해서 돌아오고 있으리라.. 그때 다시 성보 박물관이라도 들려올까 싶다.

다른 블로그

https://blog.naver.com/cnparkk/222423954718

 

월정사 현기스님과의 차담

마음속에 아름다운 숲을 만들다. (월정사, 현기스님을 만나다. 2021. 7. 4) 나찾수(나를 찾아 떠나는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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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일요법회 현기 스님 법문(2019.9.8)

https://www.youtube.com/watch?v=WE5h-NhgT7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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