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무거운 역사 (1) - 노예제도와 링컨

2020. 8. 30. 06:27북미 이야기/작은 역사 이야기

 

게티스버그 연설 - 책 표지

 

미국 무겁고, 어두운 역사 - 노예 제도

2020년 5월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라는 미국 내의 한 흑인 시민이 경찰에 의해 불필요할 정도의 강압적인 물리적 제재로 목이 눌려져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후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라는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이 다가오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어떠한 영향을 미칠 지 많은 사람들이 주시하고 있다. 미국의 흑백 갈등은 매우 오래된 역사적 원죄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모두가 알듯이 노예제도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게티스버그 연설 [원제,The Gettysburg Address] 이라는 책은 만화를 통한 미국 역사 책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흑인과 인종 문제를 다루는 미국 역사상 가장 무겁고도 어두운 주제이며, 실제의 내용도 매우 상세한 디테일로 가득차 있다. 만화라고 처음에는 쉽게 생각하고 시작하였지만, 오히려 웬만한 소설보다 더 오랜 시간 걸려서 읽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교양으로 미국 역사를 배우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 역사에 관한 내용들은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전쟁과 남북 전쟁과 같은 커다란 사건을 중심으로 배우지만, 실제로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상세한 내용들을 접할 때마다 그 사건들의 연관성을 이해하기는 쉽지가 않다.

 

기록과 유물로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역사

개인적으로는 97년부터 캐나다와 인연을 맺고 2008년 캐나다에 이민을 온 이후, 이곳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기회 있을 때마다 역사 책들을 읽었다. 하지만 미국 역사와의 밀접한 연관성에 따른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따라가면 여전히 이해를 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고, 캐나다 자체의 역사도 너무나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얼마 전 안부 전화를 하던 고향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캐나다 역사는 실제로 2-3백년 정도 밖에는 안되는 것 같은데 한국이나 중국,일본 같이 많은 사건들이 있었겠나' 라고 묻는 질문을 받았었다. 나는 이 질문도 매우 좋은 논의 거리가 있다고 이해하였지만, 다분히 상식적인 범위 내에서 답변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정말로 많은 사건들과 이야기가 있지"

 

생각을 해보면 각자는 다른 타인 한 명의 인생을 이해할 때도 실제로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다못해 한 집안의 내력이나 한 회사 조직 같은 단체의 어떤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그들의 기록 몇 년치를 파헤지는 경우도 그것은 매우 큰 업무가 된다. 개인적으로 92년에서 97년 사이에 강원도 철원과 경기도 임진강 파주 최전방에서 직업 군인으로 근무를 하였다. 1993년에서 94년 사이에는 근무하던 포병대대에서 작전보좌관이라는 직책으로 근무를 하였는데 연말이 되면 항상 상급부대로부터 부대 역사 기록을 정리하여 제출하라는 작업 지시가 내려왔었다. 그 때 자료를 정리하고 취합하면서 경험한 것이, 지난 1년 안에 벌어졌던 그 많은 행사와 사건 중 어떤 일들을 정리하고 기록해야하고, 어떤 사건들을 무시해야하는지 고민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결정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던 사실이다.

 

영어 단어 중 우리가 부유하다라고 아는 rich 라는 어휘는 초콜릿의 맛을 표현할 때나 역사적인 표현을 할 때는 '맛이 풍부하다' 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내가 이곳에서 캐나다 역사를 공부하면 할수록, 그리고 관련된 미국 역사를 찾아볼 수록 매번 느끼는 것이 그들 역시 "풍부한/진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They also have a rich History) 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비단 우리나 북미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살았던 기록을 깊이 바라보면 바라볼 수록, 그리고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그 고민의 기록을 남겼는지 이해할 때 항상 비슷하게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

 

[게티스버그 연설]에서 이야기하는 미국 흑인 노예 역사

미국 역사에 관심있는 한국 사람들이나, 나와 같이 이곳 북미에 사는 한인 교포들은 미국의 흑인 노예 제도에 따른 역사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간단한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다.

1. 남북 전쟁은 도대체 왜 촉발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링컨 대통령의 역할 중 중요한 결정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들이었나?

2. 실제로 북미 내에서 영국 식민지 시절에 노예제도가 최초로 합법화된 곳은 1641년 미국 북동부에 위치한 매사추세츠(Massachusetts) 주 지역이다. 그런데 왜 북부보다는 남부에서 노예제도가 더 강력하게 자리잡게 되었을까?

3. 미국 50개 주의 이름 중 남북으로 나뉜 주는 4개로 남북 다코다(North /South Dakota), 남북 캐롤라이나(North/South Carolina) 주들이다. 이와는 다르게 왜 버지니아는 동서(West Virginia / Virginia)로 나뉘었을까?

4. 전쟁 중 발생한 사망자 수의 관점에서, 다른 대외적인 참여 전쟁들(1,2차 세계 대전이나 최근의 이라크 전쟁 등)에 비해서 미국인들이 느끼는 남북 전쟁은 어떠한 심리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이 책에서는 수많은 등장인물과 갈등의 이야기들을 다루는 가운데 어떤 사건들은 단지 하나의 그림 안에서 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을 일일이 찾아가서 확인하기가 매우 곤란할 정도로 많은 정보를 담고 있었다. 큰 흐름 안에서 이해를 하면,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기 전부터 존재하던 흑인 노예 제도들이 경제가 커지고 미국 서부로 팽창하면서 각 주별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다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갈등이 더 이상의 정치적인 합의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까지 이르고 만다. 정치적인 해결책이 불가능하다고 느끼면서 미국은 남북으로 양분되고 무력 충돌로 치닫게 되었다. 여전히 눈을 감고 코끼리 만지는 식이지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남북 전쟁 직전의 미국 역사

미국 남북 전쟁 이전의 미국내의 사정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한 이후 지속적인 팽창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래 표에서 보는 것 같이 크게는 (1) 1803년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를 구입하고 (2) 멕시코 전쟁을 통해서 서부로 팽창이 지속되어졌다.

년도 주요 사건 한국 (중국/일본) 역사
1776년 미국 독립 선언 정조 즉위 (1776-1800)
1803년 루이지애나 구입   
1807년 영국 정부의 노예 무역 불법화 1805년부터 안동 김씨 세도 정치 시작 (60년 지속)
1812년 영국(현 캐나다)과의 전쟁 1811년 평안도 홍경래의 난
1846-1848년 멕시코 전쟁 1842년 청나라 -  아편 전쟁 영국에 패배
1854년 일본 - 미국에 대한 문호 개방
1861-1865년 미국 남북 전쟁
 - 게티스버그 전투 : 1863년 7월 1일 - 3일 
 - 게티스버그 연설 : 1863년 11월 9일 
1862년 전주에서 대규모 민란
1863년 고종 즉위 (대원군의 집권)

 

루이지애나 구입과 멕시코전쟁 사이에 벌어진 1812년 영국과의 전쟁만은 미국의 의도와는 다르게 실패한다. (이 사건은 캐나다에서도 중요한 역사라 여러가지 조사를 하고 읽었던 자료들이 있으니 다음에 다시 언급할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잠깐 언급하면 미국의 원주민들을 이끌었던 Tecumseh라는 지도자와 영국에서 온 Brock 장군의 노력에 의해 미국에도 적지 않은 피해가 있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칸사스-네브라스카 법안(Kansas-Nebraska Act)

루이지애나 구입(좌) 멕시코 전쟁 이후 팽창(우) [1]

위의 지도에서 보는 것 같이 미국의 영토가 팽창하면서 노예 문제는 다시 미국 정치인들의 뜨거운 논쟁으로 이어졌다. 미주리와 메인 주가 미연방에 합류하기 직전인 1818년까지, 미국은 10개의 노예(를 인정하는) 합법주와 10개의 자유(노예를 불법으로 하는) 주로 나누어져 있었다. 노예합법 주와 자유 주의 수에 따라 향후 노예 제도가 자신들에게 유불리하게 바뀔 것이라 우려한 정치인들은 메인 주를 자유 주로 하고, 미주리 주를 노예합법 주로 인정한다. 대신 앞으로 서부의 새로운 개척지에서는 위도 36도 30분 이상에 위치한 지역들은 자유 주로, 그 이하의 신 개척지 지역에 대해서만 노예합법 주로 하기로 한다. 이것이 미주리 협약(Missouri Compromise)이다. 

위도 36.30 를 기준으로 한 노예 불법(북부) /합법 (남부)의 협약을 대체한 칸사스-네브라스카 법안 발의 - 더글라스 의원 [2]

그러나 스티븐 더글라스(Stephen A. Douglas, 1813-1861) 상원 의원은 당시 미국 서부로 연결하는 철도 사업에서 남부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하여 국민주권(Popular Sovereignty) 이라는 개념 아래 노예를 합법으로 할 지 말지는 해당 지역의 사람들이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당연히 노예가 불법으로 인식되던 북부 주들의 반발이 일어났고, 이는 미주리 협약의 원칙을 깨는 행위였다. 

당시 민주당 소속의 14대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피어스(Franklin Pierce) 과 더글라스는 루이지애나 합병지역의 일부를 네브라스카와 칸사스로 나누고 이들에게 자체적으로 노예 제도를 결정할 수 있게 하는 칸사스-네브라스카 법안(Kansas-Nebraska Act)을 통과 시킨다. 이 법안은 남부의 노예 소유주들에게는 기존에는 금지되었던 새로운 개척지에 노예 소유를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되었다. 이에 반대한 북쪽에 위치한 주들의 민주당 의원들은 공화당을 형성하기 시작하고 나중에 링컨은 이 공화당에 가입을 하게 된다.  

캔사스-네브라스카 법안 (발췌: The Americans by Holt McDougal)

 

물론 이 칸사스-네브라스카 법안이 통과되고 그에 따른 수많은 사회적인 갈등과 연결된 다른 중요한 사건들도 많다. 하지만 1961년 미국 남북 전쟁이 일어나기 전,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1954년 통과된) 칸사스-네브라스카 법안 전후에 생긴 노예제도의 찬반에 따른 사회적 양극화를 아는 것은 남북전쟁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일 것이다.

(계속)

 

[1] Mapping History Site

https://mappinghistory.uoregon.edu/english/US/US09-01.html

[2] Kansas-Nebraska Act

https://www.youtube.com/watch?v=QYP854GAP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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